10월 22,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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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사과문
'땅콩회항' 사건관련 대한항공의 사과문

[BOOK수다] ‘공개 사과의 기술’, 사과의 바른 정의를 묻다

한 때 인터넷 서비스운영부서장으로 온라인 서비스 관련 사과 공지를 썼었다. 직접 써서 올리고 직원이 고객지원부서 ID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서버 다운 등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무료 홈페이지와 이메일 서버의 하드디스크 손상으로 데이터를 정상 복구하지 못했다. 게시판에는 데이터를 빨리 복구해 달라는 요청이 올라왔다. 조속한 시일 내에 복구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 어떤 다른 답을 더 줄 수 없었다. 이용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지도 못했고 그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보상도 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복구했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만 던졌다. ‘사람 일이 어찌 완벽하겠냐’고 운영진을 위로하고 이용자들에게 사과했지만 이용자의 마음을 감싸주지는 못했다.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Edwin L. Battistella)의 <공개 사과의 기술>을 그 때 알았다면 어떻게 ‘사과문’을 썼을까. 좀 더 진실성 있는 사과문을 썼을지 아니면 오히려 제대로 사과함으로해서 일어나는 법적이고 금전적인 손실을 생각하느라 사과하는 일을 피했을까?

언어학자로서 사과문에 담긴 내용을 분석하고 각 단어가 주는 차이는 무엇인지 조목 조목 살폈다. 오늘날 형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사과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잘 드러나게 해준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과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서는 사과의 정의를 찾아가는 동안 사과문 하나로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으며, 역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도 있음을 독자들의 생각을 이끌어준다.

기업 회장들의 기자회견을 통한 사과문이나 신문광고 지면을 통해 내놓는 사과문을 보면 이게 사과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거지, 사과의 대상과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구체적인 사항들, 진실은 들어 있지 않았다. 바티스텔라의 분석에 비추어보니 더욱 형식적인 사과문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진다.

그럼, 제대로 된 사과는 어떤 것이고, 사과의 바른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이 책에는 미국 역대 대통령을 비롯 유명 정치인들이 얽혀 있는 36개의 공개 사과 사례를 토대로 사과의 바른 정의를 찾아간다. 국내외적으로 발생한 일과 관련 제대로 된 사과는 어떤 사과였으며 실패한 사과는 왜 사과에 실패했는지 분석하고 사과의 정의와 범위를 살폈다.

‘나는 뭐 사과할 일이 없지,’ 이런 생각에 책에 소개된 내용을, 그냥 지나칠 내용이 없다. 우리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그 사과의 주체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국가의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어떻게 사과를 했는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여러 나라 중 일본은 지난 역사의 잘못을 한국에 어떤 식으로 사과를 했는지 한 번 돌아볼 일이다. 왜 사과를 피하는지. 또한 우리 국가는 국가의 잘못을 어떤 식으로 사과를 했는지 살펴보자.
“사과는 잘못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에 대한 유감을 표현해야”
이러한 의문점이 든다면, 이 책을 좀 더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사과를 통해 이전의 관계를 회복하고 명예를 되찾은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을 통해서 제대로 된 사과는 그럼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찾아본다.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몇몇 일들을 떠올려 그들이 보여준 사과문을 한 번 다시 찾아 읽어봐도 좋겠다. 그러면 바티스텔라가 제시하는 사과의 범위와 과정을 비교하여 어떤 부분이 빠져 있고 무엇이 잘못된 것이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과의 소비자(그리고 생산자)로서 각각의 문법적 선택에 대해 고민해보고, 그 문법적 장치가 사과의 뉘앙스를 어떻게 바꾸는지 물어봐야 한다. “-본문 94쪽 중

에드윈 바티스텔라는 사과문인지 아니면 핑계인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사과는 근본적으로 핑계나 합리화와 다르다. 다른 해명 전략들이 잘못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나 포장하는 데 견주어, 사과는 잘못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에 대한 유감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계속 확인한 것처럼, 설명은 저질러진 잘못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고 진실한 사과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사과 요구 중에 나온 설명도 사과로 진화해서 화해의 기반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해명도 사과를 회피하는 방법이 될 수 있고, 진실성 없는 사과는 굴욕을 냉소적으로 가장한 경우가 많다.

공개 사과의 기술
에드읜 L. 바티스텔라의 <공개 사과의 기술>

-본문 179쪽 중

저자는 이 책에서 사과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캐나다 태생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의 생각-사과는 비난받아 마땅한 자신과, 한 발 물러서서 비난하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자신, 다시 말해 정상적인 관계로 복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신으로 분리하는 행위를 나타낸다-을 토대로 사과의 개념을 언어학적 맥락에서 살펴본다.또한 ‘진정한 사과는 연출 기법 같은 것보다 근본적으로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학자 니컬러스 태뷰치스, <내가 틀렸다>의 저자이기도 한 철학자 닉 스미스의 사과의 개념도 함께 놓고 이야기한다.

사과를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은 사과의 중요한 과정이다.

사과를 받아야 할 상대가 동의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과는 정상적인 사과가 아니다. 사과가 아닌 해명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은 구체적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말장난일 뿐이다. 2009년 아마존은 이미 이용자가 다운로드받은 콘텐츠 가운데 저작권 문제가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문제가 커지자 CEO명의로 사과문이 나왔다. 이 때 베조스가 발표한 사과문,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아마존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설명이 빠졌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베조스는 아마존의 잘못과 고객에게 끼친 피해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대신 아마존과 고객의 관계에 끼친 피해에 초점을 맞춘다. 베조스는 콘텐츠 삭제로 제기된 사회적 법률도 문제도 언급하지 않고, 환불이나 배상에 대해서도 논의하지 않는다. (삭제된 전자책 구매자들은 나중에 30달러 상당의 포인트나 수표로 보상받았다.) 이것은 그럴듯한 사과지만, 상세히 검토해보면 그 의도와 한계가 보인다.” -본문 87쪽 중

살아가면서 피하고 싶은 일이 상대에게 사과하는 일일 것이다.

사과를 받는 일도 하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가해자가 되든 피해자가 뜻하지 않게 된다면, 진실이 담긴 사과, 그러한 요청과 제대로 된 사과 과정을 통한 응답은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사과는 일종의 도덕적 행위로 잘못에 대한 비난을 수용하는 것인데, 그 비난은 잘못을 지적하고 후회와 책임을 명확히 표현해서 인간관계의 도덕적 균형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 사과는 일정의 사회적 행위로, 피해자의 체면을 회복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결코 사과하지 마라, 그것은 약하다는 표시다”라는 말을 고려해보면 그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무엇이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되는 약함의 표시인가.”-본문 304쪽 중

<공개 사과의 기술>은 위기의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바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 가 역사적인 사례와 최근 미 정치 사회를 시끄럽게 한 일들과 함께 국가 간에 일어난 문제에 있어서 사과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폭 넓게 짚어본다.

사과,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갖고 봐야 한다.

“국가적 사과는 필요하고 유용한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국가적 사과는 화해의 시작이나 마무리 단계가 될 수 있다. 철학자 브라이언 와이너가 설명하듯이, 성공적인 국가 차원의 사과는 “정부가 이제 역사적 과오를 인식하고, 당시 희생자들에게 속죄하고 배상할 정부가 되었음을 선언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본문 211쪽

대한항공 사과문
‘땅콩회항’ 사건관련 대한항공의 사과문

이런 의미에서 일명 ‘땅콩회항’사건으로 알려진 대한항공의 사과문을 한 번 다시 살펴봐도 좋겠다. 다른 것들도 다르지 않다. 잘못된 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상대에게 제대로 사과했는지를 말이다. ‘경비원 폭행’으로 문제가 된 미스터 피자 회장의 사과문은 어떤가. 넥슨 김정주 회장의 사과문도 있다. 옥시가 최근 언론을 통해내놓은 사과문 광고를 에드윈 바티스텔라가 분석하고 정리한 사과문의 정석대로 한 번 짚어보자,

“오케이” 할 수 있는 게 있나?

“어떤 사람이 자기 잘못을 고백을 할 때. 우리는 그가 숨겨온 것을 명백히 밝히길 기대한다. 범죄자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범죄를 자백한다. 참회자는 죄를 진술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고백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은 어떤 행위가 자기 마음을 괴롭히는지 밝혀서 고백한다. 고백은 여러 형태를 띠지만 핵심 요소는 자기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다”-본문 142쪽 중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인물 중,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한 사람은 누가 있는가?

 

무엇이 사과인가?,
사과의 바른 정의를 묻고 답하다
최근 보도기사를 인용하여 특정 단체가 원인을 제공한 집단이라고 만들어 명예훼손으로 고발된 한 정치인은, 명예훼손을 인정한 법원 판결에 따라 공개된 장소에서 ‘사과문’을 낭독했다. 강제로 집행된 사과문 발표는 보도를 인용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잘못된 보도 탓에 자신도 잘못 인용을 하게되었다는 ‘때문에”로 끝났다.

그것이 제대로 된 사과인가?

잘못된 사과는 한 기업을 더욱 빠져나올 수 없는 길을 걷게도 하지만 회생의 길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사과하려는 사람

옥시의 사과문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옥시레킷벤키저의 사과문

은 왜 사과하려는 걸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이 책 9장에서 그 이유를 찾아 적어놓고 있다. 미안, 유감, 기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4장에서는 각 사과의 범위, 유형을 알아볼 수 있다.

미국 정치역사상 부부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만약 그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가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면 힐러리 클린턴의 도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잘못을 ‘특정하지 않은 채 사과를 했지만 나중에 그가 보여준 진정성이 훼손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으며 사과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이 내용은 이 책 5장 고백에 들어 있다.

바티스텔라는 이 책에서 많은 유명인들과 정치인 등 미국 중심의 사과유형을 살펴보지만 국제적 사건 등 다양한 사과 사례를 토대로 사과의 유형을 분석하고 어떤 사과가 그 목적을 달성했으며 어떤 사과가 사과에 실패했는지 당시에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평가하고, 잘못된 부분은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지 짚어본다.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제대로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확실히 사과해야 한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에 대한 마음이 빠져 있는, 진실성이 담겨 있지 않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공개 사과의 기술>을 찾아 읽어야 할 이유이다. 무엇이 바른 사과인지 알아야, 요구하고 응답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개 사과의 기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과는 무엇이 다른가
저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 지음, 김상현 옮김
발행일 2016.07.18
페이지 340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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