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 금요일

[Book&Talk]일본 반도체의 몰락과 혁신 기업의 딜레마

달도 차면 기울듯, 세계 반도체 시장의 헤게모니도 돌고 돌았다.

70년대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은 미국 기업들이 독무대였다. 80년대 중반들어 세계 반도체 시장, 특히 DRAM 시장의 무게 중심은 일본 회사들 중심으로 재편됐다.

달도 차면 기울듯, 일본 반도체의 시대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삼성전자를 앞세운 한국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 당시만 해도 일본 회사들이 비웃었다고 하는데, 십여년만에 어이없는 뒤집기를 당한 셈이다.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과 확실한 기술 경쟁력으로 무장했다는 평가를 받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전자가 피땀흘려 일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본 반도체 패전’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 반도체 회사들의 몰락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가 제시하는 ‘혁신 기업의 딜레마’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본 반도체 패전’의 저자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무너진 것은 과잉 기술에 집착하면서 가격과 생산성 부문에서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B급 기술만 있어도 되는데, A급을 고수하다보니 B급 기술에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을 버무린 한국과 대만 회사들에 깨졌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반도체를 만드는 건 70~80년대까지는 먹혀드는 전술이었다. 당시만 해도 반도체는 안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대형 컴퓨터에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IT패러다임이 PC로 넘어오면서 기술에 집착하는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전략은 오버액션으로 통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대형 컴퓨터용 고품질 DRAM을 생산함으로써 일본은 시장 점유율 넘버원이 되었다. 그때, 극한 기술 및 고품질을 추구하는 기술 문화가 일본 반도체 메이커에 형성되었다. 1990년대 들어 PC용 DRAM을 저비용으로 생산하는 것이 중요해졌을 때 일본은 변함없이 고품질 DRAM을 계속 생산했다. 일본 반도체 메이커에게 주요 고객은 어디까지나 대형 컴퓨터 메이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형 컴퓨터용으로 제조한 25년 보증의 고품질 DRAM을 PC용으로도 판매했다. 그러나 그 DRAM은 PC용으로는 분명히 과잉 품질이었다. 그 결과 PC용으로 저비용 DRAM을 대량 생산한 한국 등에 시장을 빼앗기고 가격 경쟁력을 상실해 DRAM 비즈니스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사실 일본이 DRAM에서 철수하기 직전 64M-DRAM의 마스크 매수는 한국, 대만과 비교해 1.5배,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약 2배였다.

외부 환경에 달라졌다면 전술을 바꿀 수도 있을 법한데 사람 잘 안바뀌듯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의 조직 문화가 삼성전자와 같은 프로세스를 갖추기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예전의 관행과 있었던 사람들 중심으로 변화를 추진하기가 참 힘들구하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기술에 재능 있는 사람은 단기간에 기술 개발로 공적을 올리고, 그에 대한 포상으로 과장이나 부장으로 승진해 기술과는 관련이 없는 일을 하게 된다. 그 반면 재능이 있는 기술이 아닌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게 되었으나 원래 매니지먼트 능력이 좋아 과장이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과장 및 부장이 무능해진다. 그 결과 기술적으로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이 난이도가 가중되는 기술 개발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얼마나 모순된 딜레마인가?

무능한 기술자가 실무자로 남아 기술 개발을 할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DRAM의 공정 플로를 작성하는 경우 이전 플로를 답습하는 가장 안이한 방법이 취해지게 될 것이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는 기술자가가 기술만 계속 연구해도 출세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평 기술자이지만 연봉은 사장보다 높은 사례가 서양 기업에는 존재한다. 일본 반도체 메이커의 마스크 매수나 공정 수가 많은 진정한 원인, 즉 일본 반도체 산업이 조락한 진정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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