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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현상, 그리고 전문가의 죽음

축구에선 한 선수가 게임을 좌지우지 하는건, 옛말이 됐다. 한 선수가 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마지막이었다.

마라도나가 이끈 아르헨티나 대표과 이탈리아 축구 클럽 나폴리는 각각 월드컵과 리그 세리에A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언론사도 다르지 않다. 유명 저널리스트 1명에 의해 판이 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체적인 조직의 역량이 승부를 좌우하는 건 축구판이나 언론사나 마찬가지다.

유능한 사람 한명 영입했다고 업계에서 해당 언론사 서열이 확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손석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손석희가 합류한 이후의 JTBC는 그가 없던 시절의 JTBC와는 180도 달라졌다.

보도 부문만 놓고보면 TV조선이나 채널A에도 밀리는 마이너 종편으로 있다가 지금은 지상파와 맞먹는 영향력을 갖춘 넘버원 종편이 됐다.

 강준만 교수가 쓴 ‘손석희 현상’을 보니 손석희는 중립적 위치에서  한발 더 들어가는 뉴스, 게이트 키핑이 아니라 아니라 뉴스 키핑을 하는, 이른바 이슈 중심의 저널리즘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선택하고 집중한다. 1분 30초 짜리 백화점식 방송 뉴스와의 결별은  그가 MBC에 있을 때부터 갖고 방송 저널리즘의 가치였다.

이에 손석희는 JTBC 뉴스룸 지휘봉을 잡으면서, 자신을 상징하는 MBC 프로그램인 시선집중과 100분토론의 DNA를 버무렸다. 다른 방송사들은 정권 눈치를 보느라 밋밋하고 하나마한 얘기를 담은 뉴스들을 쏟아낼 때 JTBC 뉴스룸은 이슈에 집중했고, 이를 기반으로 시청자들에게 신뢰받는 보도 프로그램이 됐다.

100%라 하기는 머하지만 손석희 한 사람이 북치고 장구치면서 만들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결과였다.

구경꾼 입장에서 마라도나 같은 손석희의 원맨쇼는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가는 한국 사회 현실에서, 신뢰받는 전문가가 얼마나 파워풀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는 신뢰를 기반으로 먹고 산다. 사회가 전문가에게 자격을 주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주는건 전문가가 사익이 아니라 자신에게 요구되는 명분을 추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믿음이 무너지면 전문가 체제는 붕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은 지금 전문가 체제에 대한 신뢰는 붕괴 일보직전이다. 4대강과 세월호 조사 위원회에 참여했던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은 과연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을까?  그들이 자신의 타이틀에 주어진 의무보다는 사익을 추구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의사와 변호사들이 환자와 의뢰인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고객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 믿는 이들도 있지만 꽤 많은 이들이 이들을 불신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낸 돈 만큼 결과가 나오고 있는지, 호구 노릇하는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은 내 주변에서부터 흔히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채 수요자 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더 챙긴다는 인식의 확산이 전문가 체제의 위기를 부른 본질이다. 손석희는 여기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자유롭다. 그가 이끄는 JTBC는 세월호와 국정농단 사태를 보도하면서 방송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꽤 회복했다. 이를 기반으로 시청률 끌어올렸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자 JTBC는 유력 인물들이 나오고 싶어하는 방송이 되었고, 이것은 다시 시청률 상승과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계에서 쉽게 보기 힘든 선순환 구조다.

손석희 현상은 손석희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신뢰받는 전문가 체제의 복원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위기의 한국 사회는 지금, 전문가 다운 전문가들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가 전문가 다울 때, 이를 기반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신뢰가 상승했을때, 손석희 현상이 불러온 변화처럼 세상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손석희 같은 사람이 저절로 나오는 건 아니다. 손석희가 JTBC에 가서 마라도나 같은 원맨쇼를 펼친 건 그가 뜻을 고수했고, 그 뜻을 오너가 꺾지 않았기에 가능했지만 현실에선 이같은 케이스는 나오기 어렵다.

지금의 사회는 손석희 처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든 구조다. . 전문가에게 주어진 사회적 명분과 의무를 저버리면 먹고사니즘 측면에서 훨씬 유리해지는 상황도 많다. 이런 분위기에선 전문가 답지 않은 전문가들이 늘게 마련이다.

전문가들이 전문가에게 주어진 의무를 쉽게 버리기 힘들게 만드는 시스템에 대해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전문가들의 일자리도 위협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시대, 신뢰받지 못하는 전문가들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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