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수다] AI생존을 위한 질문, AI 생존 지도
AI 전문가들의 유튜브 채널은 온통 생존을 이야기한다. 살아남을 사람과 사라질 사람을 가른다. 단순한 공포 마케팅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AI를 알지 못하면 안 되는 상황을 경고하는 것일까.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이 판에, 우리는 이미 밀려가고 있다.
이석현의 <AI 생존 지도> 역시 제목에 '생존'을 걸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도 그 대열에 선 것인가.
AI 산업 생태계와 발전 방향을 하나의 지도로 그려내며, 이 책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손에 쥐고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무기'를 들고 선 사람, 앞으로 뛰어나가는 사람,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얼굴이 떠오른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판에 참여하고 있는가. 좋은 무기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무기를 쓸 줄 알아야 비로소 싸울 수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깔아놓은 AI 플랫폼 선점 경쟁의 판에 전 세계가 뛰어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 버전이 쏟아진다. 어제 정리해 둔 자료가 오늘이면 낡은 것이 될 만큼 속도가 가파르다. 쓰는 사람에게도,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이 상황은 물러설 수 없는 소모전에 가깝다. 대한민국 역시 'AI 3대 강국'을 내걸고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국내보다 높은 기업가치로 나스닥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으로 그 무대에 설 기업은 어디일까.
이석현이 그린 이 '생존 지도'를 마주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전쟁이었다. 달리 마땅한 표현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책의 방식은 전장의 한복판에 독자를 던져 넣는 쪽이 아니다. 오히려 산 정상의 전망대에서 판 전체를 조망하게 한다. AI 기업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려 하는지, 그 판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지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한다.
저자 이석현은 30년 넘게 개발자로 일하며 기술 변화가 사람의 일과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지켜봤다. 유튜브 채널 '바이브랩스'를 운영하며 AI 도구를 활용한 창작과 생산성 향상법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3부 10장으로 짜였다. 1부는 AI가 어떤 흔적을 남기며 오늘의 시장을 만들었는지를 되짚고, 2부는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시설 투자와 자본 경쟁을 다루며, 3부는 빅테크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AI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전부터 그 문을 두드린 인물들이 있었다. 저자는 1950년대 이후 이어진 긴 침체기와 2012년 딥러닝의 전환, 2016년 알파고 충격, 2022년 챗GPT 충격을 거쳐 트랜스포머와 멀티모달로 확장되는 흐름을 차례로 짚어, 지금의 AI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단순한 아이디어가 확장되고 발전해 챗봇이 되었고, '엘라이자 효과(ELIZA effect)'라는 개념도 이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인간은 기계를 닮아가고, 기계는 인간이 되려 안달하는 형국이다.
1부는 제프리 힌튼, 젠슨 황처럼 AI 뉴스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을 소개한다. 한때 함께 일하기도 했던 이들은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대립하고 갈라선다. 그 분열이 오늘날 다양한 AI 플랫폼이 탄생한 토양이 되었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쥔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지금의 결과물에 녹아들었는지가 보인다. 제프리 힌튼과 요슈아 벤지오는 얀 르쿤과 생각을 달리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 시장 선점을 위해 자신들의 AI를 무료로 풀며 공격적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1부는 소버린 AI, 온디바이스 AI처럼 산업 현장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도 함께 짚어준다.
2부는 AI 기업들의 '자리싸움'과 '돈싸움'을 다룬다. 분야마다 서비스가 충돌한다. OS 선점을 위한 기능 경쟁, 브라우저 경쟁, 피지컬 AI 경쟁이 동시에 벌어진다. 이들은 서로 적이면서 협력자다. 그렇게 AI를 둘러싼 복잡한 구도가 형성된다. 더 정확하고 빠른 응답을 향한 경쟁이 이어지는 사이, 사람이 직접 해야 할 몫은 줄어든다. 한때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쏠렸고 지금도 그 중요성은 여전하지만, AI는 점점 더 폭넓게 사람의 질문을 이해하고 결과를 내놓는다.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한 '광산 발굴'은 계속된다. 다른 결을 지닌 미스트랄 AI의 행보도 눈에 띈다. 데이터센터 구축과 GPU 확보를 위해 이들이 얼마나 더 투자하고, 그 '실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자본 확보를 둘러싼 경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엔비디아의 GPU를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 구도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정작 돈을 버는 자는 누구인가.
곡괭이를 들고 직접 금을 캐는 광부인가, 아니면 그 광부에게 곡괭이와 청바지, 소모품을 파는 상인인가. 19세기 골드러시의 진짜 승자가 금맥을 찾은 소수가 아니라 장비를 판 상인이었다는 사실은 오늘의 판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저자 역시 이 비유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젠슨 황을 'GPU라는 곡괭이를 준비한' 인물로 소개하며, 지금 확실한 수익을 손에 쥐는 쪽이 금을 캐는 광부가 아니라 곡괭이를 파는 상인임을 짚는다. 저마다 금을 캐겠다고 AI라는 광산에 뛰어든 지금, 정작 돈을 버는 쪽은 GPU를 파는 엔비디아, 연산 능력을 임대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들이다. 광부가 금을 캐든 못 캐든 곡괭이는 팔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곡괭이를 파는 데서 끝나지 않고 빌려주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 책 179쪽이 말하는 지대(地代) 추구 경제다. AGI 시대는 이 구조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변호사는 판례를 분석하려고, 의사는 진단하려고, 작가는 글을 쓰려고 거대 기업의 AI API를 빌려 써야만 한다. 숨 쉬듯 '지능세'를 납부하는 삶이다. 정작 AI 기업들은 아무것도 직접 생산하지 않으면서 지능이라는 자원을 독점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봉건제로 퇴행하는 기이한 풍경"이라고 못 박는다. 곡괭이 상인이 광산의 영주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땅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이 된다. 이 진단이 서늘한 이유는 먼 미래의 가정이 아니라 이미 날아든 청구서이기 때문이다.
"AGI 시대는 이 지대 추구 경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일 겁니다. 변호사는 판례 분석을 위해, 의사는 진단을 위해,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거대 기업의 AI API를 빌려 써야 만 합니다. 우리는 숨 쉬는 것 처럼 앞으로 지능세를 납부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반면, AI기업들은 아무것도 직접 생산하지 않으면서 지능이라는 자원을 독점합니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봉건제로 퇴행하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하고 있습니다."-179쪽
3부는 그 청구서의 끝을 내다보는 자리다. 저자는 지금 수준을 넘어서는 범용인공지능(AGI)을 먼 미래의 SF가 아니라 곧 닥칠 현실로 전제하고, 10년 뒤 우리가 마주할 두 갈래의 미래를 그린다. 하나는 모두가 풍요를 누리는 기술 유토피아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의 플랫폼 영주가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독점하는 '기술 봉건주의'다. 앞서 본 지대 추구가 이미 시작된 조짐이라면, 이 봉건주의는 그 조짐이 굳어진 완성형이다. 10년이라는 시한은 예언이라기보다, 아직 열려 있는 선택의 창이 닫히는 시점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그 지배가 어떤 얼굴로 오는지를 저자는 189쪽에서 말한다. 터미네이터는 우리 몸을 부수러 오지 않는다. 대신 생각을 흡수한다. "총알보다 무서운 것은, 저항할 의지조차 녹여 버리는 완벽한 공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부는 두 갈래로 갈린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환상에 취한 소비자 계급과,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며 AI의 이면을 꿰뚫는 인지적 저항 계급이다. 지배가 폭력으로 오면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배는 편의와 공감의 얼굴로 온다. 불편하지 않으니 물을 이유가 없어지고,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서 소작농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남으라는 것인가. 저자가 내미는 것은 세 가지 생존 전략—일의 재정의, 커리어 투자, 관점 투자—이다. 정해진 절차를 반복하는 노동은 빠르게 대체되지만 창조하고 연결하고 판을 설계하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는 것, 독서와 인문학·질문하는 힘·논리 설계 능력을 개인의 핵심 자산으로 삼으라는 것, 유행하는 파도가 아니라 부가 모이는 바닷속 지형을 읽으라는 것이 그 골자다.
하나의 직업 사다리에 인생을 걸기보다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짜라고도 한다.
다 맞는 말이지만 너무 크다 싶을 때, 262쪽이 놀랍도록 구체적으로 내려온다.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가진 지식 중 콘텐츠나 코드로 변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작게 시작하세요. 뉴스레터 하나, 자동화 스크립트 하나, 쿠텐베르크의 인쇄기처럼, 첫 번째 페이지를 찍어 내는 순간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한 인쇄기는 멈추지 않습니다."-262쪽
저자는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물으라고 한다. 내가 가진 지식 중 콘텐츠나 코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작게 시작하라고 한다. 뉴스레터 하나, 자동화 스크립트 하나면 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그랬듯 첫 페이지를 찍어 내는 순간이 가장 어렵고,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한 인쇄기는 멈추지 않습니다"라는 것이다.
이 책의 처방은 철저히 개인의 몫에 머문다. 각자가 '1인 자본가'로 올라서라는 말은 선명하다. 그런데 인쇄기를 돌릴 여력도 시간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나. AI는 어떤 형태로든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를 가져갈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반론도 있지만, 일의 종류가 늘어난다고 해서 고용 인원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사라지고 AI만 돌아가는 공장이 현실이 될 때, 밀려난 다수를 사회는 어떻게 떠안는가. AI 활용을 위한 교육과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개인의 각오를 넘어선 제도의 몫 앞에서 이 책은 상대적으로 말을 아낀다. 조망의 시선이 개인의 발밑까지 내려올 때, 구조의 문제는 종종 각자도생의 언어로 번역되곤 한다.
그래서 저자는 질문을 바꾸라고 말한다. 월급쟁이의 질문에서 자본가의 질문으로. 이 책의 부제 그대로, '질문 자본가'가 되라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알고리즘에 사육당하는 '디지털 소작농'으로 남을 것인가, AI를 도구로 부리는 '1인 자본가'로 설 것인가의 갈림길이다.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 보자. AI로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곡괭이를 들고 금맥을 찾아 나설 것인가, 아니면 곡괭이를 파는 자리로 옮겨설 것인가.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개인에게 열린 '곡괭이 파는 자리'란 엔비디아 같은 거대 인프라 기업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AI를 그저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도구 삼아 자기만의 콘텐츠와 서비스,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파는 위치로 이동하라는 것이다. AI를 '쓰는' 자리에 머무를 것인가, AI가 벌여놓은 판 위에서 무언가를 '내다 파는' 자리로 건너갈 것인가. 이 책이 끝내 독자에게 남기는 질문은 그것이다.
이 책은 활용서가 아니다. 시중에 넘치는 AI 활용 실무서나 트렌드 개설서와 달리, 산업 구조와 자본 흐름을 위에서 조망하고 그 위에서 개인의 생존을 묻는 관점을 택했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을 프롬프트 작성법을 나열하는 기술서가 아니라 철학과 자본론의 시각으로 AI 시대를 해부하는 'AI 인문학' 생존서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 책은 공포 마케팅인가. 겁을 주어 무언가를 팔려는 책이었다면 굳이 지도를 그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겁은 시야를 좁히고, 지도는 시야를 넓힌다. 겁주는 책은 서둘러 결론으로 끌고 가지만, 이 책은 자꾸 멈춰 세워 되묻게 한다. 그것이 두 부류를 가르는 자리다.
이 책이 끝내 남기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지금 지능세를 내고 있는가, 받고 있는가. 내가 가진 것 중 콘텐츠나 코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완벽한 공감이 저항할 의지를 녹이는 시대에, 불편함을 느끼고 묻는 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자산이다. 이 책의 값은 거기에 있다.
물러설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