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6 : 김덕진 소장이 만남 사람] 주영섭 서울대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 "CES는 전시장 아닌 '생존 실험실', 피봇(Pivot) 없인 죽는다"

[CES 2026 현장 리포트 : 테크수다 * IT커뮤니케이션연구소 공동 취재팀] "지금 힘든 건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똑같이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 경쟁하기보다, CES 같은 글로벌 정글에 나와서 깨지고 부딪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로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Pivot)하는 기업만이 2026년 이후의 패권을 쥘 수 있을 것입니다."

주영섭 서울대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최근의 상황과 이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대응에 대해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주영섭 서울대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와 김덕진 IT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

화려한 기술의 향연장으로 불리던 CES의 공기가 달라졌다. 전 세계적인 경기 변동 속에서 CES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 과시'의 무대가 아닌,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치열한 '검증의 장'으로 변모했다.

CES 2026 공식 개막을 앞두고 열린 '언베일드(Unveiled)' 행사장에서 . 지금까지 25회 정도 CES를 참관해 온 'CES 베테랑'인 그는 올해 행사를 단순한 기술 전시회가 아닌, 한국 기업의 생사가 걸린 '글로벌 생존 실험실'로 정의했다.

주 교수는 인터뷰 내내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피지컬 AI(Physical AI)의 보편화 ▲중국 강소기업의 약진 ▲철저한 현지화(Pivoting) 등 세 가지 관전 포인트를 제시했다.

AI, 화면 밖으로 탈출하다... '로봇 쇼'가 된 CES

주 교수는 올해 CES의 가장 큰 특징으로 '로봇의 일상화'를 꼽았다. 과거 CES가 가전쇼에서 모빌리티쇼로 진화했다면, 이제는 명백한 '로봇 쇼(Robot Show)'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로봇 전시 방식의 변화다. 주최 측인 CTA(소비자기술협회)가 로봇을 특정 전시관에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전체에 흩뿌려 놓는 방식을 택했다. 주 교수는 이것이 AI와 로봇이 더 이상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가정, 사무실, 병원, 공장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분석했다.

그는 생성형 AI와 같은 '에이전틱 AI(Agentic AI)'는 소프트웨어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올해는 이것이 물리적 실체와 결합한 '피지컬 AI(Physical AI)' 형태로 대거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는 AI, 즉 로봇이 인간의 노동과 일상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돕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CES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빅테크 없어도 무서운 중국... '심천의 야생성' 배워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으로 화웨이 등 중국의 거대 빅테크 기업들이 불참한 자리는 '심천(Shenzhen)' 출신의 강소기업들이 채웠다. 주 교수는 중국의 정수(Best)는 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약진이 소름 끼칠 정도로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이름난 대기업은 없지만, 심천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들이 보여주는 기술적 완성도와 전략적 포지셔닝이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부재를 틈타 안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끈질긴 생존력과 시장 침투력을 벤치마킹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CES는 '자랑'하러 오는 곳 아냐... '맷집' 키우러 오는 곳

주 교수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CES를 대하는 태도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완성된 제품을 전시하고 한국 기술이 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게리 샤피로 CTA(소비자기술협회) 회장의 저서 제목인 '피봇 올 다이(Pivot or Die·전환하지 않으면 죽는다)'를 인용하며, CES는 우리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지 확인하는 거대한 '실증(PoC)' 현장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캐릭터 프린터가 점자 기기로... '피보팅'이 만든 기적

주 교수는 기업들이 CES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그대로 들고 와서 자랑만 하고 가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글로벌 시장의 니즈에 맞춰 제품을 과감히 뜯어고치는 '피보팅(Pivoting)' 능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에서 목격한 국내 스타트업 네모닉의 사례를 들었다. 2년 전만 해도 단순한 캐릭터 프린터를 들고 나왔던 기업이, 올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프린터를 들고 나왔다. 단순히 책을 읽는 용도가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이 약을 먹을 때 어떤 약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돕는 실생활 밀착형 기술로 진화한 것이다.

주 교수는 한국에만 25만 명, 전 세계 3억 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의 방향을 튼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피보팅의 표본이라고 평가했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지향하는 '목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위기는 공평하다... 밖으로 나와 깨지고 부딪쳐라

끝으로 주 교수는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인들에게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스타트업도,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굿 뉴스(Good News)'는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똑같이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조건은 공평합니다."

어려울수록 좁은 내수 시장에 머무르면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CES와 같은 글로벌 정글로 나와 전 세계 소비자와 직접 부딪치고, 그들의 냉정한 피드백을 자양분 삼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만이 2026년 이후의 패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동 취재 =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 eyeball@techsuda.com, ITCL 김덕진 소장 kimdukjin@itc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