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노을, 그리고 6미터 천장…영림원이 파주에 ‘일과 휴식’을 새로 지은 이유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 eyeball@techsuda.com] 햇살이 유난히 좋은 날이었다. 4월 23일 목요일, 자유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한 시간을 달리자 헤이리 예술마을을 지나 임진강이 멀리 펼쳐졌다. 강 너머는 북한이다. 그 강을 등진 야트막한 언덕 위에 회색 노출 콘크리트와 파주석으로 마감한 건물 네 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림원소프트랩이 218억 원을 투자해 만든 글로벌 R&D센터 ‘와이스페이스(Y SPACE)’다.
5월 8일 공식 오픈을 보름가량 앞두고 영림원이 18개 매체 기자단을 1박 2일 일정으로 초청했다. 정한중 영림원소프트랩 대외협력실 PR총괄은 행사 시작에 앞서 “와이스페이스에서 기자님들을 모시고 영림원의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운을 뗐다.
▶ 기사 핵심 3줄 요약
① 영림원소프트랩이 4월 8일 준공한 파주 글로벌 R&D센터 ‘와이스페이스’가 5월 8일 공식 오픈한다. 연면적 5,327㎡(약 1,611평) 부지에 4개 동 28객실을 갖춘 복합 공간이다.
② ‘창의·소통·휴식·가족’ 네 가지 핵심가치 아래 워크·워크스테이·워크숍·휴양 네 가지 이용 방식을 모두 담았다. 6미터 천장 워크스페이스, 카펫 마감 아이데이션홀, 가족용 60평 펜션동까지 임직원 8명 TF가 가구 하나까지 직접 골랐다.
③ 권영범 대표가 강조해온 ‘질문하는 조직문화’가 공간 언어로 번역됐다. ERP 30년 기업이 AI 시대 차세대 솔루션을 만들어낼 R&D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헤이리 옆 ‘제3의 공간’…부지 선정만 4년
와이스페이스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요풍길 117-3에 들어섰다. 헤이리 예술마을과 차로 5분 거리,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약 1시간이다. 강화도, 가평, 양평을 두루 검토한 끝에 파주가 최종 낙점됐다. 업무 접근성과 연구 몰입 환경, 글로벌 협업 편의성을 종합한 결과였다.
프로젝트는 2022년 2월 시작해 약 4년이 걸렸다. 설계는 22년 9월부터 24년 12월까지 약 2년 3개월, 공사는 24년 12월부터 26년 3월까지 약 15개월이 소요됐다. 준공일은 4월 8일. 영림원이 기업은행에서 끌어온 시설자금 대출 170억 원이 들어갔다. 회사 규모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베팅이다.
설계는 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영상 인터뷰에서 홍공식 대표는 와이스페이스를 한 문장으로 ‘기업의 가치와 구성원의 삶을 보여주는 기업문화 공간’이라 정의했다. 그는 “기존 연수원이 교육과 운영 중심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건물을 짓는 방식이 아니라 존재 방식을 짓는 일이었다”고 설명하며, 일과 삶의 교차점에서 정서적 균형을 회복하는 ‘제3의 공간’을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노출 콘크리트는 비예술적 취향이라기보다 재료의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직함의 표현이고, 파주석은 지역성을 담는 재료라는 부연도 곁들였다.
권영범 대표 역시 영상 메시지로 설계 의도를 직접 풀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공간, 워크숍을 언제든 갈 수 있는 공간, 가족과 함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라는 표현을 썼다. 1,800평 부지에 60평 펜션, 카라반, 호텔급 디럭스 객실, 캡슐형 싱글룸까지 의도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섞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6미터 천장과 한강뷰…“창의성은 공간이 만든다”
본격 투어는 연구동에서 시작됐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중앙 계단’이다. 천장을 뻥 뚫어 자연광이 쏟아지는 구조다. 위승환 영림원소프트랩 매니저는 “3층 옥상에서 내려오는 빛 덕분에 조명을 거의 켜지 않아도 공간이 환하다”며 “자연스럽게 에너지 절약 효과까지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와이스페이스 오픈 TF의 리더를 맡아 2년간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온 그는 이날 18명 기자단을 직접 안내했다.
연구동 2층 메인 워크스페이스에 올라서자 분위기가 한층 달라졌다. 공간학 분야 통설인 ‘3미터 이상 천창에서 인간이 창의성을 더 느낀다’는 연구를 두 배로 적용한 6미터 층고가 머리 위로 시원하게 열렸다. 통유리 너머로 한강이 길게 흘렀고, 그 앞에는 잔디 라운지가 펼쳐졌다. 한강 고수부지 같은 공원 분위기를 사옥 안에 들이고 싶다는 권 대표의 주문이 반영된 결과다.
워크스페이스는 7개 존으로 나뉘었다. 정상회담 분위기를 노린 대형 빅테이블 회의실, 한 자리만 둔 항공기 일등석 콘셉트의 ‘솔로 스테이션’, 비행기 좌석처럼 마주 앉는 기차형 데스크, 미국·독일·일본의 재고를 모두 뒤져 6개를 공수해온 텐트형 워크룸까지 의도적으로 통일감을 깬 가구가 곳곳에 자리했다. 가구 브랜드는 미국 스틸케이스(Steelcase)다. 위 매니저는 “실리콘밸리 IT 기업이 주로 쓰는 가구를 들여와 직원들에게 좀 더 신선한 느낌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따로 있었다. “시범 운영 기간에 직원들에게 풀어보니 이 비행기 일등석 콘셉트 공간이 제일 빨리 차더라고요.” 위 매니저가 한 자리짜리 솔로 좌석을 가리키자, 옆에 있던 다른 임원이 “그건 제가 낸 아이디어”라며 웃음을 보탰다.
영상회의실은 글로벌 R&D센터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일본·인도네시아·네팔 등 해외 거점과 동시 다발로 화상회의가 가능하도록 전자칠판 두 대를 나란히 두고, 가운데 360도 카메라를 배치했다. 본사 영업 거점인 서울 사무실과의 영상 연결도 상시 운영한다.
3층으로 올라가자 풍경이 또 달라졌다. ‘유격 훈련장’ 같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그물망과 해먹, 미끄럼틀 일부 구조까지 자녀를 동반한 직원들을 의식한 놀이 요소가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위 매니저는 “설계 단계에서 ‘파주시청이 허용해줄까’ 걱정이 컸다”며 “전문 업체를 통해 안전성 평가까지 받자 시청에서 허가가 났다. 헤이리와 프로방스 마을이 있는 파주라는 지역의 개방성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펫을 벽에 두른 아이데이션홀, 그리고 자동연주 피아노
연구동 1층의 또 다른 대표 공간은 ‘아이데이션홀(Ideation Hall)’이다. 이름 그대로 아이디어가 솟아나도록 설계했다는 이 회의실은 통상의 호텔처럼 바닥만이 아니라 벽면까지 카펫으로 마감한 점이 독특했다.
“회의는 20명 남짓이 가장 생산성이 좋다는 연구가 있어 그 인원에 맞췄습니다. 벽면을 카펫으로 마감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직원들이 좀 더 편안한 느낌을 받으면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이고, 밤에는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같이 노래를 부르며 쉴 수도 있도록 한 게 두 번째였다.” 위 매니저의 설명이다. 회의실 가운데에는 전자칠판이 놓여 있어 직원들이 언제든 낙서하듯 아이디어를 적을 수 있게 했다.
요가·명상실은 로마 판테온의 빛 처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둥근 평면 위로 부드럽게 떨어졌다. 위 매니저는 “파주 헤이리 인근에는 이른바 ‘천원 카페’ 같은 분위기 공간이 워낙 많다. 점심시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이 공간을 직원 전용 카페처럼 운영하려고 고급 오디오를 들였다”고 했다.
피아노 한 대도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직접 들여온 자동연주 피아노다. 사전에 깔린 음원이 아니라 피아노 건반이 실제로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와이스페이스 전용 앱과 연동돼 있어 미국 공연장에서 녹음된 신곡 음원도 약 일주일 뒤면 그대로 이 공간에서 재생된다. 정한중 PR총괄은 “스피커가 아니라 진짜 피아노가 치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권영범 대표의 의견을 받아 특별히 들였다”고 부연했다.
커뮤니티 라운지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또 한 번 바뀌었다. 똑같은 가구가 단 하나도 없는 공간이다. 다트 게임기 두 대, 포켓볼 테이블, 곧 들여올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 해먹과 빈백, 그리고 키 차이를 두고 마주 앉아 회의할 수 있도록 구글 캠퍼스를 벤치마킹한 단상형 좌석까지 다층적이다. 위 매니저는 “이 공간 자체도 처음에는 활용을 깊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공사하면서 정비를 하다 보니 의외의 명소가 됐다. 시범 운영 동안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라고 전했다.
대형 강연장에는 280인치 LED 스크린과 58인 좌석이 마련됐다. 영림원에서 가장 큰 팀이 약 50명 규모인 점을 고려한 설계다. 강연이나 발표뿐 아니라 영화 감상, 워크숍이 모두 가능하다.
신라호텔 침구와 7,500만 원짜리 카라반
휴식 공간의 디테일은 ‘일하기 좋은 회사’의 정의를 새로 쓰는 듯했다. 신라호텔과 동일한 모델의 침구·수건·매트리스(시몬스 뷰티레스트)가 모든 객실에 들어갔다. 전체 28개 객실은 싱글룸·디럭스룸·카라반·펜션 등 4가지 타입으로 구성됐다.
가장 작은 싱글룸은 일본 캡슐 호텔을 모델로 삼아 1밀리미터 단위까지 설계를 다듬었다. 누운 자리에서 에어컨, 조명, 바닥 난방, 빔프로젝터를 모두 조작할 수 있게 했다. 머리맡 천창을 통해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파주는 별이 잘 보이는 지역이라 일부러 천창을 뚫었다”는 게 위 매니저의 설명이다. 디럭스룸은 호텔 스탠다드 룸 형태로 트윈 베드를 갖췄고, TV 대신 빔프로젝터와 보스(Bose) 스피커를 두어 OTT 감상에 특화했다.
객실은 남자 14실, 여자 9실로 분리되며, 가운데 중정을 두 곳 뚫어 화재 시 대피 동선을 확보했다. 별도 리셉션 데스크는 없다. 모바일 사원증으로 모든 출입과 체크인이 이뤄지는 셀프서비스 구조다. 영림원이 자회사 플렉스튜디오와 함께 자체 개발한 와이스페이스 전용 앱이 그 핵심이다.
야외에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있었다. 테슬라 사이버트럭을 닮은 미니멀한 카라반 두 대다. 한 대 가격이 7,500만 원에 달한다. “직원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어 할 만한 모델이었으면 좋겠다”는 위 매니저 본인의 추천이 결정적이었다. 결과는 적중했다. 시범 운영 직후 사내 예약 시스템에서 가장 빨리 마감된 공간이 바로 카라반이었다. “설계 회사 분들에게도 시숙(試宿) 기회를 드렸는데, 그분들도 카라반부터 예약하셨다. 영상에 나온 설계자께서는 ‘이러다 직업을 잃을 것 같다’는 농담까지 던지셨다”는 일화도 따라 나왔다.
60평 펜션동, 그리고 ‘북한이 보이는’ 옥상
펜션동은 와이스페이스에서 유일하게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365일 휴양 전용으로만 운영된다. 60평 규모의 빌라(Villa) 형태에 침실 4개를 배치했다. 한 곳은 자녀를 키우는 직원들을 위한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거실 천장은 6미터로 시원하게 뽑았고, 2층에는 임진강 너머 풍경을 보면서 목욕할 수 있는 뷰 욕실과 별도 사우나실까지 들였다.
펜션동 옥상에 오르자 시야가 활짝 트였다. 위 매니저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짚었다. 임진강 건너편, 멀지 않은 곳이 북한이었다. 네이버 지도에서 그 너머는 민무늬로 비어 있다. “처음 부지를 보러 오셨을 때 부사장님이 ‘저게 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북한이에요’ 하니까 깜짝 놀라셨죠.” 위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가까운 곳에는 멀티코트와 헬스장, 어린이 놀이터, 파이어피트(모닥불 공간), 분수대도 자리했다. 코트는 족구·농구·피클볼 모두 가능한 ‘파워코트’ 자재로 시공해 보수성과 활용도를 함께 잡았다.
동선 곳곳에서 ‘이용 방식’의 다층성이 드러났다. 와이스페이스는 네 가지 모드로 운영된다. 당일 출퇴근형 ‘워크’, 1박 이상 머물며 일하는 ‘워크스테이’, 부서·TF·동호회가 함께하는 ‘워크숍’, 그리고 가족 동반 ‘휴양’이다. 직원 외에 ‘에버애스크 그룹’ 즉 가족·동료까지 이용 대상에 포함했다. 평일 워크는 거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지만, 주말 휴양 예약은 이미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는 후문이다.
앱 하나로 도는 공간…자체 개발 ‘와이스페이스 앱’
투어 중간 정한중 PR총괄이 직접 휴대전화를 꺼내 와이스페이스 전용 앱을 시연했다. 첫 화면에는 ‘39/50명 근무 중’ ‘10/36대 차량’ 같은 실시간 운영 현황이 떴다. 메뉴는 워크·휴양·공간·워크숍·프로그램·자전거·주차·카풀까지 8개로 구성됐고, 모든 예약과 입실·퇴실은 셀프서비스로 처리된다.
이 앱은 영림원 자회사 플렉스튜디오의 ‘플렉스튜디오 3.0’으로 개발됐다. 플렉스튜디오는 자연어와 템플릿으로 모바일 앱을 만들 수 있는 로우코드(Low-Code) 플랫폼이다. 정 총괄은 “앱을 전혀 모르던 TF 인력이 직접 기획해 만들었다”며 “지난해 주식회사 플렉스튜디오로 분사한 신설법인이 사업을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결제 수단이다. 와이스페이스 이용에 쓰이는 자원은 ‘누리 포인트’와 ‘하트’ 두 가지다. 누리 포인트는 회사 업무에 기여하거나 탁월한 성과를 낸 직원에게 별도로 지급된다. 하트는 권 대표가 강조해온 ‘에버온사람(EverOnSaram)’ 앱을 통해 적립된다. 직원들이 AI 시대에 맞는 마음가짐과 셀프 코칭을 실천할 때 쌓이는 가상 자산이다. 카풀 운전자에게도 별도 포인트가 부여된다. ‘얼마나 회사에 머물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기여하고 성장했는가’를 보상의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
권 대표가 평소 강조해온 어록이 그대로 시스템에 녹아 있었다. “기업문화 혁신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지만, ERP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정보 공유와 소통 구조를 개선하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가 4월 15일 ‘기업문화혁신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다시 한번 강조했던 메시지가, 한 달도 안 돼 파주의 1,800평 공간으로 구체화된 셈이다.
‘질문하는 조직’과 만난 공간…에버레스크와 와이스페이스
영림원소프트랩은 1993년 창립한 국내 대표 ERP 전문기업이다. 1997년 한국형 ERP ‘K.시스템’을 처음 발표한 뒤로 30여 년간 시장을 지켜왔다. 2020년 코스닥 상장, 2025년 매출 798억 원, 영업이익 42억 원을 기록했다. 일본·인도네시아 법인과 네팔 연구소, 베트남 파트너 체제로 한자 문화권 중심 글로벌 진출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권 대표가 부쩍 강조해온 키워드는 ‘질문’과 ‘기업문화 혁신’이다. 그는 2025년 2월 만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 《조직의 혁신을 불러오는 힘, 질문》을 직접 시나리오를 써 출간했다. 익명 질문 기반 협업 플랫폼 ‘에버레스크(EverAsk)’도 같은 시기 정식 출시했다. ‘질문 후진국’이라는 자성 위에 “수직적 소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지난 4월 15일 기업문화혁신 세미나에서 권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AI 시대일수록 경쟁력의 원천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질문하는 문화’라는 논지였다. 그는 위계와 지시 중심의 경영 방식을 비판하며, 자율과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원이 독립적인 주체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조직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와이스페이스는 이 메시지의 물리적 번역본에 가깝다. 같은 가구로 통일하지 않은 좌석 배치는 ‘다양성’의 시각적 표현이고, 카펫 벽으로 둘러싼 아이데이션홀은 ‘심리적 안전감’의 건축적 변주다. 별도 리셉션 데스크 없이 모바일 사원증으로 모든 권한이 자동 부여되는 셀프서비스 구조는 ‘자율과 신뢰’를 작동 원리로 삼는다. 직원들이 직접 가구를 고르고 운영체계까지 설계한 8인 TF의 작업 방식 자체도 ‘기획부터 운영까지 구성원이 주도한다’는 영림원 인재전략의 표본이다.
오영수 영림원소프트랩 부사장은 이날 만찬 자리에서 글로벌 사업 흐름을 함께 풀었다. 영림원은 2003년 일본 시장에 처음 진출했지만 구축형 모델의 한계를 절감한 뒤 2010년부터 클라우드 기반 사업을 준비했고, 2015년 국내에 시스템에버를 오픈했다. 2017년 일본 법인, 2018년 인도네시아 대표사무소(2022년 법인 전환)를 잇달아 세웠다. 와이스페이스가 ‘글로벌 R&D센터’를 표방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한자 문화권 중심 확장 전략이 자리한다. 인천공항에서 약 1시간 거리라는 입지가 단순 휴양지로 기획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차세대 ERP의 ‘파일럿 공간’…기술이 사업으로 이어지는 통로
권 대표는 4월 28일 IR 설명회에서도 와이스페이스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와이스페이스를 “단순한 연구개발 공간이 아니라 차세대 ERP와 AI 기반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창의·혁신·문화 기반의 통합 R&D 실행 거점”이라고 정의했다. 기술 개발에서 제품화, 고객 확산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기술이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설명이다.
핵심 제품은 ‘K-System Ace I&I(Intelligent & Integrated)’다. ERP 데이터에 AI 분석·시나리오 기능과 자연어 처리(K-bot)를 결합한 통합 플랫폼이다. 협업·SCM·MES·전자세금계산서 등 경영 솔루션 통합 플랫폼으로 확장도 추진된다. 영림원은 2026년 AI를 활용해 전사 생산성을 50%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고, 2027년부터 영업이익률 개선을 본격화해 2030년 매출 1억 달러(약 1,474억 원)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와이스페이스는 그 목표를 향한 실행 거점으로 가동된다.
해외 시장 신호도 의미 있다. 2025년 해외 매출은 약 39억 원으로 전년 대비 259% 성장했다. 비중은 전체 매출의 7%로 직전 해 2%에서 빠르게 올라섰다. 일본 ICT 전문 기업과의 파트너십,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중기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와이스페이스의 영상회의실과 글로벌 R&D 협업 동선이 단순 연출이 아니라 실제 운영 시나리오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해가 한강 너머로 지자 펜션동 마당의 파이어피트에 불이 들어왔다.
와이스페이스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질문이 머무는 자리’에 가깝다. 6미터 천장 아래 한강을 바라보며 일하는 직원도, 카라반에서 가족과 하룻밤을 보내는 직원도, 같은 회사가 만든 같은 공간 안에 있다. ERP 30년의 영림원이 다음 30년을 준비하며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한 가지로 모인다.
‘일과 삶, 회사와 사람, 기술과 문화는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그 답을 영림원은 콘크리트와 파주석, 그리고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로 먼저 적어냈다. 5월 8일 이후, 이 공간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영림원 와이스페이스 관련해 자주 묻는 질문(FAQ)
Q1. 와이스페이스는 누가, 어디에, 어떤 규모로 만들었나?A. 영림원소프트랩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요풍길 117-3에 218억 원을 들여 만든 글로벌 R&D센터다. 연면적 5,327.38㎡(약 1,611평) 부지에 연구동·펜션동·체육동·관리동 등 4개 동을 배치했다. 28개 객실과 카라반 2대, 멀티코트와 어린이 놀이터, 파이어피트까지 갖췄다. 설계는 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가 맡았고, 임직원 8명으로 구성된 오픈 TF가 가구·집기 선정과 운영체계 설계를 직접 수행했다.
Q2. 단순 연수원과는 어떻게 다른가?A. ‘창의·소통·휴식·가족’ 네 가지 핵심가치를 토대로 워크(당일 출퇴근), 워크스테이(숙박형 근무), 워크숍(부서·TF·동호회), 휴양(가족 동반) 등 네 가지 이용 방식을 모두 수용한다. 글로벌 R&D 거점 기능까지 결합돼 일본·인도네시아·네팔 등 해외 거점과의 동시 다발 영상회의가 가능하다. 권영범 대표가 정의한 ‘차세대 ERP·AI 솔루션의 통합 R&D 실행 거점’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Q3. 권영범 대표의 ‘질문하는 조직문화’는 와이스페이스와 어떻게 연결되나?A. 권 대표는 2025년 만화 형식으로 《조직의 혁신을 불러오는 힘, 질문》을 출간했고, 같은 해 익명 질문 기반 기업문화 혁신 플랫폼 ‘에버레스크(EverAsk)’를 정식 출시했다. AI 시대일수록 경쟁력의 원천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질문하는 문화라는 게 그의 일관된 메시지다. 와이스페이스는 그 메시지를 공간으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통일감을 일부러 깬 가구 배치, 카펫으로 마감한 아이데이션홀, 셀프서비스 구조 등이 자율·신뢰·심리적 안전감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Q4. 직원들은 어떻게 예약하고 이용하나?A. 자체 개발한 ‘와이스페이스 전용 앱’으로 모든 예약과 출입을 처리한다. 자회사 플렉스튜디오의 로우코드 플랫폼 ‘플렉스튜디오 3.0’ 위에서 만든 앱이다. 회사 기여도와 성과에 따라 적립되는 ‘누리 포인트’와 셀프 코칭 앱 ‘에버온사람’에서 쌓이는 ‘하트’가 화폐 역할을 한다. 회사 차원의 워크숍은 거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지만, 가족 휴양은 신청이 몰려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Q5. 영림원의 사업 전략에서 와이스페이스가 차지하는 의미는?A. 영림원은 ERP 중심 사업에서 AI·클라우드 기반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2030년 매출 1억 달러(약 1,474억 원), 2027년부터 본격적인 영업이익률 개선이 목표다. 핵심 제품인 ‘K-System Ace I&I’를 비롯한 차세대 솔루션의 ‘파일럿 → 제품 반영’ 사이클이 와이스페이스를 거점으로 가동된다. 인천공항에서 1시간 거리라는 입지는 일본·인도네시아·네팔·베트남 등 한자 문화권 중심 글로벌 협업 거점 기능까지 염두에 둔 선택이다.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 eyeball@techsu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