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화장실 땡땡이도 다 잡아낸다"… 런닝 입문자 탈출시키는 스파르타 스마트워치 '가민 포러너 170 뮤직' 사용기
[테크수다 서준석 PD seopd@techsuda.com] 저는 러닝을 싫어합니다. 그냥 귀찮은 게 아니라 진짜로, 원래부터,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안구 편집장님이 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가민 홍보팀에 메일을 딱 보내셨더라고요. "우리 서피디가 리뷰할 테니까 워치 대여 좀 해주세요"라고요. 이미 메일이 가버린 뒤에 저는 그 사실을 알았고, 제품이 도착했습니다. (어쩌겠어요, 이미 보낸 메일인데.)
리뷰를 하려면 써봐야 하고, 러닝용 워치를 쓰려면 뛰어야 합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저의 러닝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교생 선생님 vs 입시반 학년주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제 상황을 하나 더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애플워치 유저입니다. 애플워치 SE를 몇 년째 쓰고 있는데요. 이 녀석이 얼마나 상냥한 워치인지 아세요?
"서피디 님, 오늘 목표 걸음 수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뛰느라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힘내세요, 파이팅!"
약간 이런 느낌입니다. 아낌없이 칭찬 스티커를 주는 마음씨 넓은 교생 선생님 같은 워치죠. 그런데 가민 포러너 170 뮤직은 달랐습니다. 완전히.
"방금 웨이포인트까지 정확히 1m 모자라게 찍고 들어온 거 안 보여? 1m 오차도 허용 안 됩니다. 목표 지점 완주하기 전까지 기록 인정 안 돼요."
독사 같은 입시반 학년주임 선생님이랄까요. (진짜로 이랬습니다.) 마음씨 착한 교생 선생님 밑에서 느슨하게 운동하다가 단 1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까칠한 주임 선생님을 만난 셈입니다. 이 비유가 포러너 170 뮤직을 가장 잘 설명합니다.
찬 듯 안 찬 듯, 이게 배터리가 들어있는 게 맞아?
처음 포러너 170 뮤직을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건 스펙이나 기능이 아니라 '무게'였습니다. 애플워치SE도 무거운 편은 아닌데, 가민은 "이 안에 배터리가 진짜 들어있는 거 맞아?" 싶을 정도로 가볍더라고요.
러닝을 싫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몸에 뭐가 달려있다는 느낌 자체가 싫거든요. 시계가 무거우면 더더욱 뛰기 싫어집니다. 그런데 이 가민 워치는 찬 듯 안 찬 듯한 착용감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민을 차보고 나니까 오히려 애플워치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배터리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애플워치를 쓸 때는 매일 밤 충전 독에 올려놓는 게 일상이었고, 수면 측정을 하려면 낮에도 짬짬이 충전을 챙겨야 했습니다. 번거롭죠. 근데 가민은 충전기를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릴 때쯤 한 번씩 꽂아주면 됩니다. (실제로 충전 케이블을 며칠 동안 못 찾은 적이 있었는데도 배터리가 살아있었습니다.)
공식 스펙은 최대 15일이고요. 제가 실제로 써보니 GPS를 많이 켤수록 소모가 빨라져서, 매일 운동하면 대략 일주일 정도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매일 충전 압박에서 해방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수면 데이터, 심박수, 운동 기록까지 24시간 끊김 없이 쌓이는 게 확실히 다르더군요.
칼같은 GPS, 골목길도 놓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하면서 이 주임 선생님의 진가가 드러났습니다.
GPS 정확도가 진짜 칼같습니다. 도심 빌딩 숲이나 나무가 우거진 공원 길을 달려도 경로 궤적이나 페이스를 단 1m의 오차도 없이 잡아냅니다. 저희 동네에 강아지 모양으로 유명한 '닥스훈트 러닝 코스'가 있는데요. 이 코스의 GPX 파일을 가민에 세팅하고 직접 달려봤습니다.
처음 10분 정도는 GPS 신호가 완전히 안정되기 전이라 조금 오락가락했는데, 안정화된 이후에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좌회전·우회전 안내를 진동과 음성으로 동시에 줬고, 코스를 이탈하면 바로 경고 알림이 왔습니다. 어설픈 골목길 구간도 디테일하게 안내해 줬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요. 회차(반환) 지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지나쳐 봤을 때 이탈 알림이 즉각 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원점 복귀 경로 계산은 아직 개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내비게이션 모드를 켜면 시계 화면이 가려집니다. 현재 시간을 보려면 버튼을 눌러 화면을 바꿔야 하는데, 달리면서 이게 생각보다 불편합니다. 내비게이션 화면 한 구석에 시계가 작게라도 보인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오토 스톱: 땡땡이도 다 알고 있다
러닝 도중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석촌호수 근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가민 워치의 무시무시한 기능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오토 스타트 & 스톱' 기능입니다. 멈추는 순간 귀신같이 감지해서 기록을 일시정지합니다. 화장실 다녀오면서 에스칼레이터를 탔더니 그것도 바로 잡아냈습니다. 땡땡이를 치면 다 알고 있는, 진짜 입시반 주임 선생님 같은 녀석입니다. (무섭습니다.)
결과적으로 7.2km 코스를 뛰려다가 길을 조금 헤맨 덕에 8km를 뛰고 겨우 완주 인정을 받았습니다. 최대 심박수 190까지 올라갔고요. 이 데이터들은 가민 커넥트 앱과 웹을 통해 상세하게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이 부분은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요즘 많이들 하시는 존 2(Zone 2) 훈련에도 유용합니다. 워치 화면에서 지금 심박 존이 몇 단계인지 실시간으로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페이스 훈련할 때 정말 도움이 됩니다.
음악 기능 꿀팁, 특히 맥 유저에게
제가 사용한 모델은 뮤직 기능이 탑재된 '포러너 170 뮤직'입니다.
처음에는 스포티파이 계정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 파일을 워치로 직접 옮겨두면 스마트폰 없이 워치와 무선 이어폰만으로 음악을 들으며 달릴 수 있습니다. 특히 여름에 스마트폰을 들고 뛰는 게 불편하셨던 분들에게는 정말 좋은 기능입니다.
맥 사용자분들을 위한 팁을 하나 드리면, PC용 가민 익스프레스(Garmin Express) 앱을 설치하고 워치를 케이블로 연결하면 맥의 애플 뮤직 보관함과 깔끔하게 연동됩니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애플 뮤직 스트리밍 구독으로 다운로드받은 음원은 DRM 때문에 가민으로 전송이 안 됩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갖고 있던 MP3 파일을 애플 뮤직 보관함에 추가해 뒀다면, 가민 익스프레스를 통해 워치로 쉽게 넣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방법으로 운동 플레이리스트를 워치에 옮겨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산에서 더 빛나는 GPX 내비게이션
이번에 포러너 170 뮤직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한 기능은 GPX 지도를 활용한 내비게이션입니다. 이 기능은 러닝보다 등산할 때 더 빛납니다.
초행길 산에서 "이 길이 맞나?" 하고 헷갈릴 때 손목 화면만 보면 됩니다. 경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즉시 경고를 줍니다. 이전 운동 기록을 코스로 변환해서 다시 달리거나, 웨이포인트를 찍어두고 도장 깨기 하듯 통과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최근 네이버 지도에도 GPX 파일 다운로드 기능이 생겼습니다. 저는 네이버 지도로 코스를 만들어 강원도 가리왕산 야간 등산에서 써봤는데요. 평소 야간 산행에서는 메인 등산로 대신 심마니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다니는 샛길로 빠지기 쉬운데, GPX를 세팅해두니 이정표를 한 번도 안 보고 헤맬 일 없이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단, 한 가지 알아두실 게 있습니다. 스마트폰 등산 앱(트랭글 등)으로 기록한 GPX를 가민 워치에 그대로 적용하면 미세한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GPS 좌표는 오락가락하기 쉬워서, 같은 길을 왕복했는데 등산과 하산 경로가 다르게 찍히는 경우도 흔합니다. 가민은 전문 GPS 칩셋을 쓰기 때문에 정확도가 훨씬 높은데, 그만큼 스마트폰 기반 GPX와 매치가 안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솔직한 단점: 스마트 기능은 답답한 아저씨
여기까지 읽으면 가민 찬양 기사처럼 보일 텐데요. 단점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운동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워치가, 스마트 기능 영역으로 오면 갑자기 답답한 아저씨로 변합니다. 특히 애플워치를 오래 쓰셨던 분들은 처음 적응이 정말 힘들 수 있습니다.
가장 불편했던 건 스마트폰 알림 미러링입니다. 아이폰 유저들은 어떤 앱은 배너만, 어떤 앱은 진동만 오도록 세밀하게 설정해 두잖아요. 저도 그렇게 쓰고 있었는데, 가민은 이 세밀한 패턴을 온전히 따라오지 못합니다.
처음 연동했더니 온갖 앱 알림이 워치 화면에 쏟아져서, 가민 커넥트 앱에서 일일이 수동으로 앱별 알림을 꺼줘야 했습니다. 너무 번거로워서 그냥 스마트폰 알림 연동을 통째로 꺼버렸더니, 이번엔 아이폰으로 걸려오는 전화까지 워치가 싹 다 차단해버리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루 종일 부재중 전화를 만드는 대참사였죠. (그날 정말 난감했습니다.)
알림 설정을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데만 며칠이 걸렸습니다. 친절한 가이드도 없어서 맨땅에 헤딩해야 했고요. 가민이 이 부분만큼은 빠른 업데이트로 개선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국, 어떤 워치를 선택해야 할까
스마트 기능은 조금 투박하지만, 운동 기능만큼은 포러너 170 뮤직이 압도적입니다. 단순히 러닝 하나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러닝·하이킹·수영·자전거를 넘나드는 멀티스포츠 유저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자유도를 제공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를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감성과 매끄러운 일상 편의성을 원하신다면 애플워치나 갤럭시워치가 맞습니다. 반면 게으른 나를 억지로라도 뛰게 만들고, 정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력을 확실하게 끌어올려줄 입시반 코치가 필요하다면 가민 포러너 170 뮤직입니다. 매일 충전하는 게 귀찮으신 분, 타협 없는 GPS와 GPX 내비게이션이 필요한 아웃도어 유저 분들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러닝을 막 시작한 분들이나 가벼운 취미 수준이라면 애플워치나 갤럭시워치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입문 티를 벗고 진지하게 실력을 올리고 싶은 분들, 러닝과 아웃도어를 동시에 즐기는 분들이라면, 이 빡센 입시반 선생님이 확실한 선택이 될 겁니다.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제 러닝 실력을 확실히 끌어올려준 건 분명 이 녀석이었습니다. 융통성이 좀 부족해도, 결과가 말해주더라고요. [테크수다 Techsu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