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의 기술변론] 삼성 기밀로 삼성을 상대로 소송한 내부자의 결말, "훔친 패"는 법정에서 통하지 않았다
공개 자료로 만든 보고서도 영업비밀…서울고법, 안승호 전 부사장 징역 3년·법정구속, 보안은 '예방'이자 '사후 입증' 장치
이번 글은 2026년 10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이 선고한 '삼성전자 특허 기밀 유출 사건'을 통해 영업비밀 보호의 쟁점을 짚어 봅니다. 공개된 재료로 만든 분석 보고서가 왜 영업비밀이 되는지, 최고 수준의 보안 체계를 갖춘 기업이 왜 유출을 막지 못했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두 나라 법정에서 이길 수 있었는지를 차례로 따라갑니다.
2021년 11월, 미국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특허침해 소송 한 건이 접수되었다. 원고는 음향기기 특허를 보유한 테키야와 특허관리기업 시너지IP였고, 피고는 삼성전자였다. 갤럭시 버즈 등 무선 이어폰이 테키야의 오디오 녹음장치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이었으며, 원고 측이 요구한 합의금은 9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해마다 수십 건씩 겪는 평범한 특허 분쟁이다.
그런데 시너지IP를 세운 사람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삼성전자의 특허 방어를 총괄한 초대 IP센터장, 안승호 전 부사장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그가 쥐고 있던 무기는 특허만이 아니었다. 바로 그 특허들에 대해 삼성전자가 내부에서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세워 둔 기밀 보고서였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26년 10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은 안 전 부사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보석을 취소해 법정구속했다. 그에게 보고서를 넘긴 삼성전자 IP센터 이씨는 징역 3년을, 함께 재판을 받은 이동호 전 삼성디스플레이 출원그룹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역시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미국의 특허 소송은 그보다 앞선 2024년 5월에 이미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를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사익을 취한 '배신적 행위'라고 불렀다. 상고심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두 법정은 이미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물음이 떠오른다.
- 공개된 특허와 문헌을 분석해서 만든 보고서가 어떻게 법이 보호하는 영업비밀이 될 수 있는가?
-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체계를 갖춘 기업은 왜 유출을 막지 못했는가?
- 삼성은 어떻게 두 나라의 법정에서 모두 이길 수 있었는가?
이 물음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정보가 힘이 된 시대에 기업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조직에 몸담은 개인이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어디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법원은 무엇을 영업비밀로 보았는가
사건은 두 갈래로 얽혀 있다.
첫째 갈래의 중심에는 안승호 전 부사장이 있다.
그는 2019년 삼성전자를 떠나 특허관리기업 시너지IP를 세웠고, 2021년 8월 삼성전자 IP센터 직원 이씨로부터 테키야 특허에 관한 내부 현안 보고서를 넘겨받아 미국 소송에 활용한 혐의로 2024년 6월 구속기소되었다. 검찰은 그가 이 보고서를 토대로 소송에 사용할 특허를 고르고 그 중요도를 결정했으며, 보고서를 투자자와 공유하여 소송 자금까지 끌어들였다고 보았다.
둘째 갈래의 중심에는 이동호 전 삼성디스플레이 출원그룹장이 있다.
그는 다음 세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 삼성디스플레이의 사내 특허 출원을 맡길 대리인을 선정해 주는 대가로 한국·미국·중국의 특허법인으로부터 수년간 약 7억 원을 차명계좌로 받은 혐의
- 정부가 출자한 국내 최초의 특허관리기업 자금으로 가치 없는 일본 회사 특허를 77만 달러에 사들이고 그중 27만 달러를 돌려받는 데 가담한 혐의
- 일본에 특허컨설팅 업체를 세워 브로커로 활동하던 이씨에게 내부 정보를 건넨 혐의
1심은 2026년 2월 안 전 부사장에게 징역 3년을, 이 전 그룹장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약 5억 3천만 원을 선고했고, 항소심은 이 전 그룹장의 형을 징역 4년으로 높였다.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테키야 현안 보고서가 과연 영업비밀인가 하는 것이었다. 피고인 측은 보고서가 이미 공개된 특허와 선행문헌을 분석한 것에 불과하고, 영업비밀은 특허 발명에 준하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 정보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외부에서 쉽게 알 수 없는 삼성의 특허 유효성 평가와 선행문헌 조사 결과, 대응 전략이 담겨 있었다. 또한 IP센터와 기술분석팀, 법무팀의 여러 직원이 수개월 동안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들여 만든 것으로서 상대방이 손에 넣으면 협상과 소송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정보였고,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만 열람하도록 관리되고 있었다. 비공지성과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이라는 영업비밀의 3요건을 모두 갖춘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재료가 공개되어 있다는 점만으로 그 결과물의 비밀성이 부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공개 문헌 가운데 무엇을 골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전략으로 엮었는지는 오직 그 회사만이 가진 판단이며, 이는 공개된 정보들의 조합도 비공지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 대법원 2024. 4. 12. 선고 2022도16851 판결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재판부가 '배신'이라는 단어를 고른 이유
재판부가 굳이 '배신'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고른 이유는 이 사건의 구조를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 방어하던 자가 공격자로 돌아섰다. 회사의 특허 방어를 오랫동안 총괄한 사람은 어느 특허가 회사를 아프게 하는지, 회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 현직 내부자가 유출의 통로가 되었다. 항소심은 이씨가 접근 권한 없이 손에 넣은 보고서의 파일명을 바꾸고 기밀(Confidential) 표시를 지우고 나서 넘긴 사실을 고의와 부정한 목적의 근거로 들었다.
- 회사가 임원에게 위임한 권한 자체가 거래 대상이 되었다. 출원 대리인을 고르는 권한을 금전적인 대가와 맞바꾼 혐의는 영업비밀 침해와 죄명은 다르지만, 회사의 신뢰를 사적 수익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
안 전 부사장 측은 특허권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였다고 항변했지만, 항소심은 삼성 직원에게서 내부 분석과 대응 전략을 받아 해외 기업에 넘긴 행위를 정당한 권리 행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대의 패를 보고 치는 게임, 그 위험성
특허 분쟁은 결국 정보 싸움이다. 상대가 나의 내부 평가를 손에 넣는다면, 그는 내가 어느 특허를 두려워하는지, 그 특허를 무너뜨릴 자료를 확보했는지, 어디까지 물러설 수 있는지를 모두 알게 된다. 이는 카드 게임에서 상대에게 내 패를 모두 보여 주고 승부를 겨루는 것과 다름없다. 이 사건에서 유출된 보고서는 공격할 특허를 고르는 지도이자, 협상 테이블에서 압박의 근거이자, 소송 자금을 끌어오는 투자 설명서 노릇을 했다.
흔히 영업비밀이라 하면 반도체 공정이나 신제품 설계도 같은 기술 정보를 떠올리지만, 이 사건은 기업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만큼이나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가'가 위험한 정보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이런 법무·전략 정보가 연구개발 문서와 달리 보안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데 있다.
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체계를 갖춘 기업이다. 그런데도 유출을 막지 못한 까닭은 이 사건의 통로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술적 보안은 주로 외부 침입자를 막도록 설계되지만, 이 사건에서 정보가 흘러나간 길은 전직 상사와 그의 부하 직원이었던 현직자의 내부 관계였다.
이는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선고된 영업비밀 판결 1,710건을 분석한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침해 사건의 77.95%가 내부자에 의해 일어났고, 그 가운데 66.96%가 퇴직자였다(특허청 『영업비밀·기술유출실태파악을 위한 기업 규모·업종별 판결문 분석』 연구용역 보고서 21면).
그러나 이 사건에는 역설도 숨어 있다. 삼성의 보안 체계는 유출을 막지는 못했지만, 접근 권한 기록과 기밀 표시, 내부 시스템 보안 덕분에 보고서의 영업비밀성과 피고인들의 고의를 입증할 수 있었다. 퇴직자의 머릿속에 남은 일반적 지식과 경험은 법으로도 회수하기 어렵지만, 특정된 문서로 남은 정보는 끝까지 추적된다. 보안은 예방 장치임과 동시에 사후 입증의 장치였던 것이다.
두 나라 법정이 내린 같은 결론
결말을 지은 것은 두 나라 법정의 일치된 판단이었다. 미국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은 2024년 5월, 이 소송이 삼성의 기밀을 부정하게 이용해 제기된 것이라고 보고 기각했다. 부정한 행위로 권리를 행사하려는 자는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이른바 '불결한 손(unclean hands)'의 법리가 작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 법원은 한국 검찰이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을 인정했다.
국내 항소심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피고인들이 끝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았고 피해 회복도 충분하지 않다며 검찰의 양형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이씨와 이 전 그룹장의 형을 높였고, 실형을 받고도 보석 상태에 있던 피고인들을 모두 법정에서 구속했다.
자물쇠보다 기록, 기록보다 신뢰: 내부자 유출을 막는 방어선
첫 번째 교훈은 방어선을 '사람의 이동 경로'를 따라 다시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 재직 단계: 직무에 필요한 만큼만 접근을 허용하는 최소 권한 원칙을 지키고, 직무와 무관한 문서 열람이나 기밀 표시 삭제, 파일명 변경, 대량 출력 같은 행동을 이상 징후로 포착해야 한다.
- 퇴직 단계: 막연한 포괄적 서약 대신 그 사람이 실제로 접근했던 영업비밀의 목록을 특정한 비밀유지서약을 받고, 특허·법무·전략처럼 회사의 약점을 아는 핵심 인력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친정을 상대로 한 분쟁 업무를 제한하는 약정을 검토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약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으므로 기간과 범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판례의 기준에 맞추어야 효력을 인정받는다.
- 거래처 관리: 이동호 전 그룹장의 사례는 거래처 관리 역시 같은 문제라는 점을 일깨운다. 외부 대리인을 고르는 권한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고 복수의 심사와 정기적인 순환, 지급 내역 감사로 나누어 둘 때, 정보 보안과 반부패 통제는 '신뢰 관리'라는 하나의 체계로 묶인다.
두 번째 교훈은 법원이 인정하는 수준의 비밀관리를 갖추는 일이다.
무엇보다 무엇이 비밀인지를 먼저 특정해야 하며, 그 목록에는 기술 문서뿐 아니라 분석 보고서와 협상 메모, 소송 대응 전략 같은 파생 문서도 포함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기밀 표시'를 남겨야 한다. 이 사건에서 보듯 표시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표시가 있었기에 그것을 지운 행위가 고의의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여기에 누가 언제 열람했는지를 남기는 접근 기록과, 인사이동 때마다 권한을 다시 점검하는 절차가 더해져야 한다.
이 대목에서 중소기업은 특히 긴장해야 한다. 삼성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 장치들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며, 기록도 표시도 없는 회사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실제로 앞서 본 2024년 판결 분석에서 영업비밀의 특정 여부가 쟁점이 된 104건 가운데 98건에서 특정성이 부정되었다. '삼성도 당했다'보다 '삼성이라서 이겼다'가 더 무거운 경고인 이유다.
세 번째 교훈은 유출이 이미 일어났을 때의 대응에 관한 것이다.
삼성은 미국에서 시너지IP와 테키야를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형사 절차를 진행했고, 한국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는 다시 미국 법정에서 쓰였다. 형사 절차와 해외 소송이 서로 증거를 주고받으며 맞물린 것이다.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원칙은 분명하다. 유출 정황을 알게 된 즉시 사이버 포렌식으로 접근 기록과 전송 경로를 보전해야 하고, 형사 고소와 민사상 금지·손해배상 청구, 해외 소송의 항변을 처음부터 하나의 전략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대응의 출발점은 결국 평상시의 기록이다. 수사기관도 법원도 회사가 무엇을 비밀로 관리해 왔는지 증명되지 않으면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 사후 대응의 성패는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맺으며
안승호 전 부사장은 삼성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를 법정에 세운 것 역시 삼성이 남겨 둔 기록, 곧 접근 권한과 기밀 표시와 내부 보안의 흔적이었다. 그가 쥐었다고 믿은 패는 상대의 패를 훔쳐본 것에 지나지 않았고, 훔친 패로 시작한 승부는 미국에서는 소송 기각으로, 한국에서는 법정구속으로 끝났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을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공개된 재료로 만든 것이라도 회사의 판단이 담긴 정보라면 영업비밀이 될 수 있다. 보안을 뚫는 것은 언제나 시스템이 아니라 신뢰를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지키는 마지막 장치는 자물쇠가 아니라 기록이다.
정보가 힘이 된 시대일수록 그 힘을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단단한 신의다. 훔친 정보로 얻은 승리는 없다. 남는 것은 법정에 새겨진 배신의 이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