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의 기술변론] 매뉴얼에 없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무엇부터 지킬 것인가
"암묵지 위험지도"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 경영자의 결정은 우선 조치 3건 이내
암묵지와 피지컬AI ②
"정변의 기술변론'","암묵지와 피지컬 AI"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회(①)에서는 정년을 앞둔 숙련자의 "손맛"이 로봇의 학습데이터가 되는 시대에, 경영자가 보존·보호를 시작할 공정 한 곳과 책임자 한 명을 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번 회(②)는 그다음 질문, "우리 회사에 그런 숙련자가 한 사람뿐일까?"에서 출발합니다. 여러 지식 가운데 무엇부터 지킬지 정하는 "암묵지 위험지도"를 소개합니다. 다음 회(③)에서는 위험지도에서 고른 지식 하나를 숙련자와 함께 풀어 기록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착수 메모를 쓰고 나면 드는 질문
지난 회 가상사례의 A사로 돌아가 보자. 착수 메모를 쓴 뒤 A사 생산팀장이 품질·인사 담당자와 반나절 동안 검토해 보니, 매뉴얼에 없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 일곱 명이나 나왔다.
금형 보수를 맡은 C 기사는 1년 뒤 정년을 맞는다. 열처리 조건을 잡는 D 주임은 다른 회사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다는 얘기가 돈다. 도장 라인의 도료 배합은 그동안 설비 협력업체 기술자가 와서 조정해 왔는데, 최근 그 업체가 AI 기반 자동 배합 시스템을 제안해 왔다.
중소기업은 인력과 예산이 한정적이어서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다룰 수 없다. 무엇부터 할지 정하는 도구가 필요하다. 이번 회에 제안하는 '암묵지 위험지도'가 그 도구다.
왜 "위험지도"인가
지난 회에서 짚은 위험은 세 가지였다. 암묵지가 은퇴·사망·이직으로 사라질 위험, 수집한 지식이 회사 밖으로 유출될 위험, 장인·회사·외부 사업자 사이의 권리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채 일이 진행될 위험이다. 이 위험은 공정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C 기사는 은퇴가 가깝지만 외부 접촉은 없다. 도장 라인은 숙련자가 회사 안에 없고, 지식이 처음부터 협력업체 쪽에 있다. 위험지도는 이런 차이를 한 장에 펼쳐 놓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해 준다.
완전히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인력 고령화에 대응해 핵심 지식을 잃을 위험을 평가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식을 확보하거나 손실에 대비하는 계획을 세운 뒤 점검하는 방식이 2000년대 중반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의자료로 소개됐다. 제조 현장에 그대로 옮길 표준은 아니지만 '평가 → 계획 → 점검'이라는 골격은 참고할 만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지도를 그리나
지도의 한 줄은 '어느 공정에서 누가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가'라는 지식 단위다. 각 줄을 네 가지 기준으로 본다.
- 소멸 위험: 숙련자의 퇴직·이동 예정 시점,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직원 수, 작업표준서에 판단 이유까지 적혀 있는지
- 유출 위험: 외부 AI·로봇·설비 사업자가 데이터를 모으고 있거나 모을 예정인지, 정부 지원사업에 데이터를 제공하는지, 관련 자료가 외부 AI 서비스에 입력된 적이 있는지, 협력업체가 그 지식을 쥐고 있는지
- 사업 영향: 판단이 틀리거나 사라졌을 때 품질·원가·안전·납기에 생기는 영향
- 권리관계 정리 상태: 숙련자에게 목적을 설명했는지, 수집 근거를 갖췄는지, 외부 사업자와 데이터·모델의 귀속과 이용 범위를 약정했는지
사용례는 이렇다. 앞의 세 기준은 1~3점으로 매긴다. 사업 영향이 3점이면서 소멸 위험이나 유출 위험 가운데 하나가 3점이면 '우선 조치'로 올린다. 권리관계가 정리되지 않았는데 외부 수집이 예정돼 있다면 점수와 관계없이 우선 조치다. 다만 이 배점은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예시일 뿐 검증된 산식이 아니므로 회사 사정에 맞게 고쳐 쓰면 된다.
지식의 성격도 함께 적는다
위험이 크다고 해서 모두 영업비밀로 묶어서는 안 된다. 지식의 성격을 미리 구분해 구분된 조치를 해야 한다.
- 영업비밀 후보: 비밀로 관리할 가치가 있는 지식. 회사 고유의 판단 기준에 따른다.
- 특허 검토: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더라도 특허권으로 확보해 배타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편이 나은 지식
- 안전·품질 공유 우선: 작업자 안전과 품질을 위해 널리 알려야 하는 지식. 법이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도 있다. 화학물질의 명칭·함유량은 원칙적으로 물질안전보건자료에 적어야 하고, 적지 않으려면 영업비밀임을 입증해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제112조).
- 일반 숙련: 해당 직종에서 오래 일하면 갖추게 되는 지식·기술. 회사가 독점하려 하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 경계는 연재 ⑥화에서 다룬다.
- 국가핵심기술 확인: 첨단 기술을 다루는 공정이라면 보유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판정을 신청할 수 있다(산업기술보호법). 해당하면 수출 등에 별도 절차가 따르므로 해외 사업자와 협업하기 전에 확인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지도가 증명하는 것, 증명하지 못하는 것
지도에 적었다고 곧바로 영업비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업비밀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으며, 비밀로 관리된 정보여야 한다(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분쟁이 생기면 보호받아야 할 정보를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 지도는 그 특정과 관리를 어디부터 시작할지 정하는 목록이다. 그래서 지도에는 판단의 내용이 아니라 '주입 속도 조정 기준'처럼 지식의 이름과 위치만 적으면 충분하다.
오히려 지도 자체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회사의 핵심 노하우가 어디에 있고 누구에게 기대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 주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을 정하고, 외부 AI 서비스에 입력하지 않는 정보로 분류하길 권한다. 숙련자의 퇴직 예정일이나 이직 가능성은 개인정보이기도 하므로 이름 대신 식별 코드를 쓰고 목적 외로는 쓰지 않아야 한다. 지도가 인사평가나 감시 도구로 받아들여지면 숙련자의 협조를 얻기 어렵다. 숙련자는 위험의 원인이 아니라 지식의 기여자라는 점을 지도를 만들 때부터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지도는 조치 계획과 함께 남겨야 의미가 있다. 위험 목록만 있고 조치가 없다면 관리 체계를 갖췄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선 조치 항목마다 조치 방향, 담당자, 기한을 붙여 경영진에 보고하는 데까지가 지도의 제작이다.
경영자가 오늘 정할 일 : 우선 조치 3건 이내
경영자가 결정할 일은 하나다. 위험지도에서 '우선 조치' 항목을 3건 이내로 정하고, 항목마다 조치 방향과 담당자·기한을 승인하는 것이다. 조치 방향은 다음 가운데 고르면 된다.
- 암묵지의 표출화와 승계 착수
- 외부와의 계약서 보완
- 안전 정보 공유
- 국가핵심기술 판정 검토
- 관찰 유지
책임자는 생산·품질·인사·법무(보안) 담당이 함께하는 회의를 준비한다. 회의에서는 착수 메모, 숙련자 퇴직·이동 일정, 외부 사업자 계약과 제공 자료 목록을 나눠 보고, 지도를 쓰기 전에 숙련자 대표에게 목적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다. 남길 기록은 '위험지도 등록표'와 '우선 조치 승인 기록'이다. 지도는 반기마다, 그리고 숙련자 퇴직이 확정되거나 외부 계약을 맺을 때마다 갱신한다. (등록표 서식과 배점 기준표,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는 원문 별첨 참조)
자주 나오는 질문 세 가지
Q. 위험지도에 오른 지식은 전부 비밀로 관리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지도는 보호해야 할 지식을 가려내는 목록이지 영업비밀 지정서가 아니다. '지식 성격' 칸에서 영업비밀 후보로 분류한 것만 다음 단계에서 범위를 특정하고 비밀로 지정해 접근·이용을 통제하면 된다. 안전·품질을 위해 공유할 지식과 일반 숙련까지 묶어 두면 관리 부담만 커지고, 분쟁에서 보호 대상을 특정하기도 어려워진다.
Q. 숙련자의 퇴직 예정일이나 이직 가능성을 지도에 적어도 되나?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여서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이름 대신 식별 코드를 쓰고, 코드와 이름의 대응표는 인사 담당만 따로 보관하며, 퇴직·이동 시점은 '1년 이내·1~3년·3년 초과' 같은 구간으로 적길 권한다. 이직 가능성처럼 추측이 섞인 내용은 적지 않거나 '이동 가능성 있음' 정도로 줄이는 것이 안전하다. 인사정보를 이 목적에 쓸 수 있는 근거와 범위는 회사의 개인정보 처리 현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개인정보 담당자와 확인해야 한다.
Q. 정부의 제조 암묵지 지원사업에 참여하려는데, 지도에는 어떻게 반영하나?
해당 공정의 '유출 위험' 칸에 지원사업 참여 계획을 적고, '권리관계 정리 상태' 칸에 협약 조건 확인 여부를 표시한다. 공고문과 협약서에서 수집한 데이터와 개발된 AI 모델을 누구에게 제공하는지,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 별도의 동의서를 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영업비밀 후보로 분류한 지식이 그 범위에 들어가는지 검토해야 한다. 숙련자에게도 데이터가 어디까지 쓰이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맺으며
모든 지식을 한꺼번에 지킬 수는 없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할 수 있다. 지도 한 장과 우선 조치 3건이면 첫 출발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