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의 기술변론] "척 보면 압니다"…장인의 판단을 다섯 칸으로 기록하는 법
작업·신호·판단·행동·예외…위험지도에서 고른 지식 하나를 숙련자와 함께 풀어 쓴다
암묵지와 피지컬AI ③
"정변의 기술변론" , "암묵지와 피지컬 AI"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회(②)에서는 '암묵지 위험지도'를 그려 우선 조치 항목을 3건 이내로 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번 회(③)는 그렇게 고른 지식 하나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다룹니다. 숙련자가 "척 보면 압니다"라고 답하는 지식을 작업·신호·판단·행동·예외의 다섯 칸으로 풀어 적는 방법입니다. 다음 회(④)에서는 이 다섯 칸을 인터뷰·작업영상·센서·디지털트윈 중 어떤 수단으로 채울지, 수단마다 수집 전에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살핍니다.
"척 보면 압니다"라는 대답
지난 회 가상사례 A사의 첫 번째 우선 조치는 B 반장의 '주입 속도 조정 기준'이었다. 로봇·AI 업체의 수집이 예정돼 있고,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회사 안에 없는 지식이다.
생산팀장이 B 반장에게 언제 속도를 바꾸시느냐고 묻자 "척 보면 압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업 영상을 석 달 동안 찍어도 이 대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영상에는 속도를 바꾼 순간이 남지만, 무엇을 보고 왜 바꿨는지, 어떤 날은 왜 일부러 바꾸지 않았는지는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 빈칸을 채우는 것이 이번 회의 주제다.
결과가 아니라 '판단'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작업표준서에는 대개 결과만 적는다. 온도 범위, 주입 시간, 합격 기준 같은 것들이다. 숙련자와 초보자의 차이는 그 결과에 이르는 '판단'에서 나온다. 지난 9월 지식재산처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연 포럼의 한 발제도 제조 AI의 핵심이 데이터의 양보다, 숙련자가 어떤 상황에서 왜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를 학습 가능한 데이터로 쌓는 데 있다고 짚었다.
판단을 기록해 두면 쓰임이 세 가지 생긴다.
- 후배를 가르치는 교재가 된다.
- AI를 학습시키거나 AI가 검색해 참고하는 자료가 된다.
- 분쟁이 생겼을 때 회사가 무엇을 보유하고 있었는지 특정하는 재료가 된다.
결과만 기록해서는 세 가지 모두 어려워진다.
판단 하나를 다섯 칸으로 나눈다
필자는 판단 하나를 다음 다섯 칸으로 나눠 적을 것을 제안한다.
- 작업: 어떤 공정,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는 판단인가?(예: 래들 교체 직후의 첫 주입)
- 신호: 무엇을 보고·듣고·느끼는가, 평소와 무엇이 다른가?
- 판단: 그 신호를 무엇이라고 해석하는가?
- 행동: 무엇을 얼마나 바꾸는가?
- 예외: 언제 이 규칙이 통하지 않는가, 언제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하는가?
원문의 가상사례로 채워 보면 이런 모양이다. 2라인 대형 하우징의 래들 교체 직후 첫 주입(작업)에서, 주입구 소리가 평소보다 둔해지고 쇳물 흐름이 끊기듯 보이면(신호), 주형 안 가스가 제때 빠지지 못하는 것으로 읽고(판단), 주입 속도를 낮춰 잠시 유지한 뒤 원래 속도로 되돌린다(행동). 겨울철 아침 첫 주입은 소리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새 주형 재료 로트에서는 이 규칙을 적용하지 않고 반장이 직접 판단한다(예외). 숙련자가 말한 이유는 "속도를 그대로 뒀을 때 기포 불량이 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예시는 설명을 위해 만든 것으로, 주조 공정의 기술적 정확성을 검증한 내용이 아니다.
가장 놓치기 쉬운 칸은 '예외'다. 이런 장면은 자주 일어나지 않아 영상과 센서 기록에도 드물게 남고, 숙련자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누락되기 쉽다.
기록은 다른 사람이 아닌 숙련자가 주도해야 한다. 평상시의 작업을 관찰한 뒤, 실제로 겪은 까다로운 사례 하나를 함께 되짚으면서 "그때 무엇이 눈에 들어왔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지"를 묻는 방식이 도움이 된다. 실제 사건을 되짚으며 판단의 단서를 묻는 이런 면담 기법은 소방 지휘관 같은 전문가의 의사결정 연구에서 발전해 왔다(Klein 등, 1989). 기록한 내용은 숙련자가 읽고 고칠 수 있어야 하고, 숙련자가 확인해야 기록지가 완성된다.
법은 이 기록을 어떻게 보는가
첫째, 기록지는 영업비밀을 '특정'하는 재료가 된다.
대법원은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를 구하려면 비밀성을 잃지 않는 한도에서 가능한 한 영업비밀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본다(대법원 2013. 8. 22.자 2011마1624 결정). '주입 노하우'라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조건에서 어떤 신호가 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어야 특정이 가능해진다.
둘째, 개별 요소가 외부에 알려졌다고 해서 보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쇳물 색으로 온도를 가늠한다는 사실은 교과서에도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은 공지된 정보를 조합한 정보라도 그 조합이 업계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조합된 전체를 통상 입수하기 어렵다면 공공연히 알려진 정보라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대법원 2024. 4. 12. 선고 2022도16851 판결). 가정용 맥주제조기의 공정흐름도가 문제 된 형사사건이지만, 다섯 칸을 낱낱이 흩어 두지 말고 한 묶음의 판단으로 기록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준다.
셋째, 그렇다고 기록만 했다고 바로 영업비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업비밀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으며, 비밀로 관리된 정보여야 한다(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 기록지는 가치와 권리관계를 평가하고 비밀로 지정해 접근을 통제하는 다음 단계의 입력자료다. 그래서 칸마다 그 직종에서 오래 일하면 갖추게 되는 일반적인 숙련에 가까운지, 이 회사의 설비·재료에서만 통하는 고유한 판단인지를 숙련자와 함께 예비로 표시해 두길 권한다. 일반 숙련과 고유한 암묵지의 최종 경계는 연재 ⑥화에서 다룬다. '예외' 칸에서 작업자 안전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영업비밀이 아니라 공유 대상으로 돌리고,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이 보이면 직무발명 검토로 넘긴다.
경영자가 오늘 정할 일: 지식 한 건과 '기록 규칙'
경영자가 결정할 일은 기록지를 작성할 지식 한 건과 '기록 규칙'을 승인하는 것이다. 기록 규칙에는 다음이 들어간다.
- 숙련자의 참여 방식과 업무시간 인정
- 녹음·촬영 여부와 그 근거
- 저장 위치와 열람 범위
- 외부 AI 서비스 입력 금지
기록지는 회사의 핵심 판단이 가장 구체적으로 적힌 문서다. 승인되지 않은 생성형 AI로 요약하거나 정리하면 안 된다. 숙련자의 실수나 작업 습관이 드러날 수 있으니 인사평가에 쓰지 않는다는 원칙도 함께 밝혀 두어야 한다.
산출물은 「판단 조건·예외 기록지」다. 기록 내용이 정확한지, 다른 사람이 따라 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현장·기술 전문가가 확인할 영역이다. 이 단계에서는 숙련자가 확인한 날짜와 '재현성 미검증'이라는 체크를 남겨 둔다. (기록지 서식과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는 원문 별첨 참조)
피지컬 AI와의 관계도 짚어 둔다. 다섯 칸은 AI 데이터를 설계할 때 상황 조건, 입력 신호, 해석, 출력 행동, 경계 사례에 대응시킬 수 있다. 다만 기록지를 AI 학습에 쓸지, AI가 검색해 참고하는 문서로만 둘지에 따라 정보가 남는 곳과 통제 방법이 달라진다. 이 차이는 연재 ⑨·⑩화에서 계약과 함께 다룬다.
자주 나오는 질문 세 가지
Q. 숙련자가 설명을 꺼리면 어떻게 하나?
먼저 꺼리는 이유를 들어 봐야 한다. 자신이 대체될 것이라는 걱정, 본인의 실수가 기록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부담, 자신의 기여가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흔한 이유다. 그래서 기록의 목적과 활용 범위, 인사평가에 쓰지 않는다는 원칙, 기여 기록과 업무시간 인정을 먼저 약속하는 것이 순서다. 업무 범위 안에서 협조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판단의 이유와 예외는 숙련자가 스스로 설명해야만 채워진다. 참여·동의·보상의 구체적 기준은 연재 ⑦화에서 다룬다.
Q. 기록지 작성을 외부 컨설팅·AI 업체에 맡겨도 되나?
맡길 수는 있다. 다만 업체가 면담 내용과 기록지를 보게 되므로, 맡기기 전에 비밀유지, 기록지와 면담 자료의 귀속, 이용 범위와 다른 고객 사업에 재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정, 계약 종료 후 반환·삭제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 업체가 면담 내용을 자기 AI 서비스로 정리한다면 그렇게 입력된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고 학습에 쓰이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계약 조항 예시는 연재 ⑨화에서 다룬다.
Q. 수치까지 기록지에 다 적어야 하나? 기록해 둘수록 유출이 걱정된다.
특정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적어야 하고, 구체적일수록 새어 나갈 때의 피해도 커진다. 그래서 원본 기록지는 수치와 조건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해 열람 권한을 정한 저장소에 두고, 교육용·공유용 사본은 필요한 범위만 남기는 식으로 등급을 나누길 권한다. 원본과 사본 모두 버전과 작성일, 열람 이력을 남겨 두어야 한다.
맺으며
"척 보면 압니다"라는 말 속에는 작업, 신호, 판단, 행동, 예외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 있다. 숙련자와 함께 그것을 다섯 칸으로 쪼개면 암묵지를 검증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형태가 된다. 다만 그 기록의 주인공은 숙련자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