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문장으로 앱 만드는 "훈민정음", 개발 도구 "IDE"까지 공개
고교생이 2022년 시작한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4년 만에 모바일 앱·서버 개발 도구로…셈틀, 한글날 공개
한국어 문장으로 앱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래밍 언어 '훈민정음'이 개발 도구까지 갖추고 공개됐다. 주식회사 셈틀(대표 오현우)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은 지난 9일 훈민정음 언어와 전용 개발 도구 '훈민정음 IDE'를 선보였다고 12일 밝혔다.
훈민정음은 한국어 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려, 코드를 읽기만 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게 한 언어다. 셈틀이 든 예시는 이렇다. "버튼의 내용은 '관람 신청'이고, 누르면 관람신청하기를 실행한다." 코드가 곧 한국어 문장처럼 읽힌다.
핵심 요약
- 셈틀, 한글날(10월 9일) 한국어 프로그래밍 언어 '훈민정음'과 전용 개발 도구 '훈민정음 IDE' 공개
- 아이폰·안드로이드 앱, 컴퓨터 프로그램, 앱 데이터를 처리하는 서버까지 개발 가능(회사 설명)
- 아이폰 앱 '현문현답'의 앱과 서버를 훈민정음 코드로 작성, 컴파일러도 이 언어로 개발
- 컴파일러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결과를 대조하는 검증 자료도 함께 공개
- 언어·개발 도구·사용 안내서·검증 자료는 hmje.semtle.net에서 확인
고교 시절 시작한 언어, AI 시대에 다시 꺼냈다
훈민정음은 2022년 시작됐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오현우 대표가 평소 쓰고 말하는 한국어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직접 언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프로그래밍을 익혔고, 자신이 쓴 문장이 화면에서 실행되는 모습을 보며 개발을 이어갔다. 오 대표는 현재 KAIST 전산학부에 재학 중이다.
개발은 한동안 멈춰 있었다. 다시 불을 붙인 것은 AI였다. AI가 개발 방식을 크게 바꾸면서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려워졌다"는 고민이 생겼고, 오 대표가 찾은 답이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우게 된 계기였던 훈민정음을 완성하는 일이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고교 시절 앱 안에서만 돌던 언어가 4년 만에 실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도구가 됐다.
'현문현답'이 첫 실전 사례…컴파일러도 훈민정음으로
실제 서비스 적용 사례는 아이폰 앱 '현문현답'이다. 여행지의 지금 상황을 물으면 현재 그곳에 있는 사람이 답해 주는 서비스로, 셈틀에 따르면 이용자가 쓰는 앱뿐 아니라 뒤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서버까지 훈민정음 코드로 작성됐다. 전용 개발 도구와, 코드를 실제 프로그램으로 바꿔 주는 컴파일러도 이 언어로 개발됐다.
눈에 띄는 대목은 검증 자료다. 셈틀은 컴파일러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그 결과를 대조해 볼 수 있는 자료를 함께 공개했다. 언어가 스스로를 만들 수 있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게 열어 둔 셈이다. 구체적인 검증 방법과 결과는 공개 페이지에서 확인해야 한다.
한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받기를 기다리지 않겠다
오현우 대표는 "훈민정음 서문에는 이 글자를 만든 이유가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적혀 있다"며 "이 이름을 쓰는 이상 지켜야 할 기준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받기를 기다리지 않겠다. 처음 시작하는 길을 더 쉽게 만들고, 막히는 곳을 먼저 고치고, 매일 쓰는 제품으로 증명하겠다"며 "저에게 훈민정음은 오래된 시작으로 돌아오는 일이었고, 이제는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셈틀은 학창 시절 개발 동아리에서 출발해 2026년 5월 법인을 설립했다. 그 전부터 이어 온 성과가 적지 않다. 2022년 개발한 훈민정음은 KAIST가 소개한 독자 개발 프로젝트다. 2024년에는 팀 프로젝트 '셈틀 스페이스'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메타버스 개발자 경진대회 성인부 최우수상(한국전파진흥협회장상)을 받았고, 2025년에는 오 대표가 개인 프로젝트 'SwiftData Assistant'로 Apple Swift Student Challenge의 Distinguished Winner(전 세계 50명)에 선정돼 WWDC25에 초청받았다. 올해 7월에는 파리 RAISE Summit Hackathon에서 통신망 장애 대응용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 'ARC'로 Vultr 트랙 2위에 올랐다.
올해 9월에는 캔버스 기반 AI 작업 도구 '셈틀 마디'를 내놨고, 컴퓨터 폴더에서 직접 작업하는 '마디 코드'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한글 기반 언어와 교육용 도구는 예전부터 여러 차례 시도됐다. 그럼에도 이번 소식을 눈여겨볼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AI 시대에 프로그래밍 언어가 무슨 의미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사람이 쓴 자연어에 가까운 문장이 곧 프로그램이 되는 흐름은 AI 코딩 도구가 만든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한국어 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린 언어가, AI가 코드를 대신 쓰는 시대에 사람이 코드를 읽고 검증하는 수단으로 어떤 가치를 가질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둘째, 데모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서비스(현문현답)의 앱과 서버, 컴파일러까지 자기 언어로 만들었다고 밝힌 점이다. 컴파일러 재구현과 대조 자료 공개도 검증 가능성을 열어 두려는 시도로 읽힌다.
다만 확인할 부분도 남는다. 지원 범위(iOS·안드로이드·서버)와 성능, 기존 언어 대비 생산성, 외부 개발자의 도입 사례는 아직 회사 설명에 의존한다. 이번 발표에는 이용자 수나 도입 기업 등 수치도 없다. 생태계가 얼마나 자라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고교 시절의 아이디어를 4년간 이어 와 실제 도구로 완성했다는 점은 분명 눈길을 끈다.
[테크수다 이창길 기자 jjangkil@techsuda.com]
테크수다 co-founder
"IT 산업의 기틀을 다진 1.5세대 전문가에서, 이제는 AI와 인본주의적 복지를 연결하는 전략가로" 약 25년 이상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정책 제언, 표준화, 인재 양성 및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