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울 오피스 연 'AI 안전'의 앤트로픽, 첫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 eyeball@techsuda.com] 앤트로픽(Anthropic)의 서울 오피스 개소는 한국 AI 생태계에 반가운 소식이다. 그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17일 콘래드 서울 간담회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환대보다 아쉬움에 가까웠다. 정작 그 자리에 모인 기자들이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 앞에서, 회사는 답을 피했다.

사안은 행사 직전 터졌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지난 12일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Fable) 5와 미토스 5에 대한 외국인 접근을 전면 차단하라는 수출통제 지시를 내렸다. 행사를 불과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 여파는 한국으로도 번졌다. 미토스 기반 사이버보안 컨소시엄 프로젝트 글래스윙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텔레콤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접근도 한순간에 막혔다. 본사에서 함께 오기로 했던 공동창업자 톰의 방한도 취소됐다.
더 민감한 문제는 워싱턴포스트의 15일 보도였다. 보도는 백악관 관계자를 익명으로 인용해 ‘중국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한국 통신사’가 미토스 추가 접근 목록에 포함됐고, 이것이 백악관의 신뢰 상실과 수출통제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회사명은 특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토스 접근이 공식 확인된 통신사가 SK텔레콤뿐이라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곧장 추측이 따라붙었다. SK텔레콤은 “중국과의 연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KT와 LG유플러스도 애초에 접근 권한 자체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익명의 한 문장이 한국 기업 하나를 느닷없이 안보 리스크의 한복판에 세운 셈이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앤트로픽은 서울 간담회장에서 무엇을 말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말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기자가 수출통제 재개 가능성과 글래스윙 한국 파트너의 상태를 묻자 크리스 차우리(Chris Ciauri) 인터내셔널 총괄은 “블로그를 보라”는 취지로 답했다. 뉴스원 기자가 글래스윙 참여 기업을 다시 묻자 “현재로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는 “추측에 대한 추측처럼 들린다”며 답을 피했다.
질문이 이어질수록 간담회장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보안뉴스 기자가 “대부분의 기자가 그것을 궁금해한다”고 말했지만, 진행자는 오히려 관련 질문을 지양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가 긴급회의를 열 만큼 민감한 사안이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마련한 자리였다. 그런데 회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설명하기보다 밀어내는 쪽을 택했다.
물론 앤트로픽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비밀유지협약이 있을 수 있고, 미국 정부와의 협상이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안보와 수출통제가 걸린 사안에서 기업이 말을 아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말을 아끼는 것과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다르다. 한국 파트너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재개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국 고객의 불안을 어떻게 보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은 가능했어야 한다. 그날 행사는 단순한 제품 설명회가 아니라 서울 오피스 개소 간담회였기 때문이다.
더 아쉬운 것은 앤트로픽이 그동안 내세워 온 정체성과의 간극이다. 이 회사는 ‘AI 안전’을 전면에 걸고 성장해 왔다. 차우리 총괄도 이날 위험 기반 접근, 클로드 헌법, 책임 있는 스케일링 정책을 길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자사 기술과 미국 정부의 결정이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에 혼란을 준 상황에서도 그 책임의 언어가 이어졌어야 한다. 안전은 좋은 날에만 꺼내는 브랜드 문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기영 한국 대표가 취임 2주 반 만에 이런 자리에 선 것은 분명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가 강조한 ‘신중한 도입’이라는 메시지도 한국 시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의 말로 들렸다. 하지만 신임 대표의 선의만으로 본사발 리스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묻고 있다. 정치적 리스크에 노출된 벤더를 핵심 업무에 들여도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블로그 링크로 대신할 수 없다.
서울 오피스의 불은 켜졌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의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화려한 고객 명단보다 중요한 것은 불편한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다. 17일 앤트로픽은 그 첫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않았다.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 eyeball@techsuda.com
테크가 전 산업 영역에 스며드는 소식에 관심이 많다. 1999년 정보시대 PCWEEK 테크 전문지 기자로 입문한 후 월간 텔레닷컴, 인터넷 미디어 블로터닷넷 창간 멤버로 활동했다. 개발자 잡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편집장을 거쳐 테크수다를 창간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태블릿을 가지고 얼굴이 꽉 찬 방송, 스마트폰을 활용한 현장 라이브를 한국 최초로 진행했다.